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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집법선봉 - 執法先鋒:Above the Law, 1986


    

   영화 <집법선봉 - 執法先鋒: Above the Law, 1986> 에서 원표는 여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골든 하베스트의 지원 하에 원규와 공동으로 제작과 무술감독을 겸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단독 주연으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액션에 있어서도 총격전과 자동차 추격전으로 화려하게 시작해 다양한 격투와 스턴트, 중간 규모 이상의 폭발이 골고루 섞여 있다. '가화삼보' 로 불리던 성룡과 홍금보에 비해 덜 주목을 받았던 원표에게 일단 <집법선봉> 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전력을 쏟는 영화처럼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약간 이상하다. 영화 속에서 원표는 종종 필요 이상으로 자리를 비우기도 하며 상당수의 액션을 나부락 (신시아 로스록이라는 이름 보다 그가 출연한 영화의 배역을 따와 만든 羅芙洛 이라는 중국식 가명에 더 익숙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에게 할애한다. 결정적으로 영화가 지나치게 어둡다.


   원표가 맡은 역할은 영국에서 공부하고 홍콩으로 돌아 온 정의감 넘치는 검사다. 전형적인 홍콩식 액션영화에서 주인공의 직업이 검사라는 것이 일단은 특이해 보이는데, 청부살인업자에 의해 법전에 총구멍이 나고 짓밟히는 도입부의 노골적인 장면을 생각해보면 세상에 법과 정의가 없다는 영화의 비관 (?!) 을 직언하기 위한 의도된 설정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검사 정의감이 지나쳐보인다. 도입부 이후로 그가 더욱 악을 혐오하고 검사라는 직업에 무력함을 느끼게 되었으리라는 짐작이 들지만 법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그걸 파괴하는 자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신념이 너무나도 강하다. 단순히 범죄를 입증할 유력한 증인이 살해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물증이 없는 피의자를 찾아가 두 말 없이 목젖을 눌러버린다.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식이라 죄책감을 느끼지도, 도망치거나 숨지도 않는다. "난 늙었으니 자네가 죽인다면 무죄로 판결 하겠네" 라는 홍콩 판사와의 대화에서 예견된 일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의 직업이 누구보다 먼저 법을 지켜야 할 검사라는 점에서 매우 익숙한 솜씨로 피의자를 살해하는 모습은 정서적인 공감을 느낄 겨를도 없다. 시답잖은 농담을 덧붙이자면, 이전에도 똑같은 이유로 그가 살해한 악당이 얼마나 될지 궁금할 정도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악당이건 선인이건 간에 본능대로 일을 벌인다. 때문에 앞뒤 가리지 않는다. 오호 통재라, 세상의 법과 정의가 땅에 떨어졌으니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선한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는 하영정은 (원표) 은 물론 그의 살인을 눈치 채고 추적하는 강력계 형사 신디 (나부락), 범죄자와 결탁하여 더 큰 악행을 저지르는 경찰 내부의 배신자 황경사 (황금신), 하다못해 하영정과 관련이 있는 좀도둑 소년까지도 그렇다. 이들은 지나칠 정도로 단순해서 대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일을 벌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정확하게는 후일을 내다보지 못하는 각본의 허술함이 문제겠으나 그런 대책 없는 인물들의 성격과 이야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더욱 선명해진다.


   <집법선봉> 은 다수의 홍콩 영화가 그런 것처럼 두 가지의 상이한 버전이 존재한다. 약간의 삭제와 재촬영으로 인해 다른 결말을 만들어 놓았다. 먼저 오리지널 버전은 좀도둑 소년이 범죄조직 두목의 벤츠에 몰래 숨어드는 장면 (이후 황경사가 두목을 죽이는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하영정이 두목을 살해했다고 오해한 신디가 법정으로 찾아가 체포하려는 5분여의 걸친 실랑이가 존재하지만 다른 버전에서는 모두 삭제되었다. 또 오리지널은 황경사와의 대결 끝에 신디가 가슴과 목에 꼬챙이가 찔려 잔혹하게 살해당하고 하영정은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부상을 입은 채로 죽은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에 비해 다른 버전에서는 둘 다 살아남아 하영정이 살인에 대한 형량을 선고 받는 것으로 끝이 난다. 사실 어느 버전이 되었건 간에 영화는 비정하다. 그 과정이 거칠기 짝이 없어도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되었노라고 하기엔 일관되게 밀고 나가기 때문이다. 무고한 죽음을 앞에 두고 법의 무용론을 이야기하는 원표의 연기는 너무 진지하고 심각해서 다른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자 타협할 수 없는 신념이라는 점에서 한 편으론 무협영화의 무사와도 닮았다. 세상의 타락과 냉정함 앞에서 거의 될 대로 되라 자학하다 파멸에 이르고 마는 장철의 무협영화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는 가정 하에 보자면 <집법선봉> 은 시대를 거쳐 다양한 방식으로 장르가 변주되어 온 홍콩에서 매우 익숙한 영화인지도 모른다.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비약을 덧붙이자면, 얼핏 가화삼보가 출연한 <비룡맹장> 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 영화에서 원표가 연기한 동덕표는 어떤 이유인지 혼자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산다. 그는 거의 반미치광이에 사회부적응자로까지 묘사되곤 하는데 친구인 성룡에게 도청을 부탁받자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서는 안 되는 거 아니겠냐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이 세상에 법과 정의가 없다고 울분을 토하는 <집법선봉> 에서의 원표는 밑도 끝도 없이 세상에 대한 냉소를 툭툭 내던지며 충돌을 일으키는 <비룡맹장> 의 원표와도 살짝 닮아 보인다. <비룡맹장> 을 만들면서 <집법선봉> 을 참고 했을지 모른다는 추측 (이건 좀 말이 안 되어 보이긴 하다;;;) 도 가능할 것이다. 어찌됐건, 나름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악전고투하다 모두가 비참한 결말에 이르는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달리 제목이 '집법선봉 (執法先鋒)' 이 아니며 메이저 스튜디오 시스템 안에서 이처럼 과격한 세계관의 액션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홍콩영화만의 색다른 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원표는 비운의 배우다. 단역과 스턴트를 전전하던 시기를 벗어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던 시절에도 원표는 주인공이기 보다 조력자에 가까웠다. 이를테면 그와 많은 영화에서 작업했던 홍금보의 옆에 항상 원표가 따라붙는 식이다. 복성시리즈에서도 원표는 그리 비중이 크지 않은 성룡이 비해 더 작은 배역을 도맡는다. 우정출연에 가까운 때문이기도 하지만, 심지어 <하일복성> 에서는 전문적으로 쿵푸를 배운 적이 없는 유덕화에게 자리를 내주기까지 한다. 비교적 균등한 기회를 보장 받은 <프로젝트A> 와 <쾌찬차>, <비룡맹장> 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표는 <집법선봉> 에서 수많은 영화를 통해 다져진 예의 그 날렵한 액션을 선보인다. 야외 주차장에서 석대의 차량과 다수의 폭력배들에 둘러싸여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장면은 원표 액션의 특징을 종합적으로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 외에도 공중에서 한 바퀴 반을 회전하여 발차기를 하는 장관 (그가 축구를 소재로 한 '파우' 에 출연했으니까 선풍각이라는 고유의 이름 대신 축구에 비유하자면 시저스 킥에 가깝다) 을 선사하기도 하는데 나중에 <금동기협> 에서 더 멋진 360도 공중회전 차기를 선보이지만 와이어의 도움을 받기도 했으니 거의 모든 장면을 대역 없이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집법선봉> 은 그냥 생짜다.


   그 외에도 원규와 유조명, 우마가 단역에 가까운 조연으로 출연하고 있으며 주제가는 장학우가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