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

푸른 이끼 (靑苔; The Moss, 2008)

푸른 이끼 (靑苔; The Moss, 2008)

감독 : 곽자건
각본 : 곽자건
출연 : 여문락, 번소황, 승색려, 사설아, 요계지, 증지위, 소음음


  [푸른 이끼]의 모티브가 되는 것은 오프닝 씬의 나레이션에 나오는 [에메랄드 공주]라는 동화로, 에메랄드를 가진 공주와 공주를 납치한 괴물, 무사의 이야기다. 무사는 에메랄드를 따라서 공주를 찾게 되고 괴물과 싸움을 벌이는데, 이 동화는 몇 번에 걸쳐 등장하면서 이 영화의 모티브를 환기시킨다. 이 동화에 나오는 에메랄드 공주처럼 아화(사설아)는 진짜 에메랄드를 갖게 되는데, 그건 원래 청 마담(소음음)의 아들인 케이 것이었다. 창녀와 악당들, 거지들이 넘치는 삼수이포 거리를 양분하고 있는 것은 아통(요계지)이 보스로 있는 안경파와 그 라이벌인 청 마담의 패거리였는데, 어머니 선물이라며 밀수한 에메랄드를 갖고 오던 케이는 안경파 구역에서 실종된다. 청 마담은 안경파가 케이를 죽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한 창녀가 우발적인 다툼 끝에 벌인 짓으로, 우연히 현장을 목격하게 된 아화는 케이의 몸에서 나온 에메랄드를 갖게 된다. 아화는 어머니가 죽자 언니인 루루(승색려)를 따라서 삼수이포로 흘러들어왔고, 루루는 경찰인 아장(여문락)과 서로 좋아하는 사이다. 아장은 한때 이 지역 범죄 조직에 잠입해서 스파이 노릇을 했지만 지금은 양아치라고 비웃음을 당하는 처지로, 거리의 여자들을 단속하는 일이 그의 주된 업무다. 청 마담이 과거 두 조직에서 첩자 노릇을 했던 현직 경찰 아장을 메신저로 선택하면서 그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에 말려들게 된다.

  그리고 언니를 따라 매음굴에 머물던 아화는 쓰레기를 뒤지던 거지(번소황)를 만난다. 아화는 거지에게 연민과 동질감을 느끼고 잘 대해주는데, 그는 사실 아통을 죽이기 위해 고용된 킬러였다. 거지가 나타남으로써 에메랄드 공주와 괴물, 무사의 삼각관계가 완성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 아화는 같은 층에 사는 창녀들에게 요리를 해주는 등의 일이나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아이가 손님을 받는 것이다. 하긴 그런 일을 하러 온 게 아니면 아무리 언니가 있는 곳이라도 매음굴에 눌러앉을 까닭이 없지만 그 장면을 볼 때까지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좀 충격을 받았는데, 시각적인 자극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의 격투씬에 더 충격을 받았을 것 같다. 홍콩 영화의 폭력 묘사가 그리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 [푸른 이끼]는 다른 홍콩 영화들보다 더 잔인했으면 잔인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다. [푸른 이끼]의 잔혹함을 강조하는 것은 극단적이며 과장된 캐릭터인데, 이 영화의 주요한 악당으로 나오는 동남아계 외국인들은 폭력에 열광하며 살인과 강간을 즐기는 인간 말종들로 묘사되고 있다. 이들에게는 인간다운 구석이 전혀 없다. 액션 씬의 카메라 워크도 극도로 흔들리고 있는데, 이런 점들을 생각해 보면 감독은 극단적으로 잔인한 캐릭터와 잔인한 액션 씬을 통해 폭력을 보고 느끼는 어떤 충격과 공포 같은 것을 그려내고자 했던 것 같다. 영화 속에서 그 공포는 대부분 아화의 몫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푸른 이끼]에서 과장된 것은 동남아계 외국인 캐릭터들만이 아니다. 주요 등장인물인 거지의 묘사도 과장이 심한 편인데, 심한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가 벌떡벌떡 일어나서 싸우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쥐약을 먹었는데 멀쩡한 까닭은 뭘까? 영화에서는 이 점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 [푸른 이끼]의 거지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어머니와의 추억에 집착하는 괴물처럼 그려지고 있는데, 정확히 꼬집어서 말하긴 어렵지만 지나치게 전형적인, 판에 박힌 캐릭터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푸른 이끼]는 참 이상한 영화다. [푸른 이끼]는 살인사건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홍콩 우범지역의 잔혹하고 슬픈 현실을 그리는 영화 같지만 많은 부분이 과장되어 있고 극단적이며 전형적인데, 정말로 동화 같지 않은가? 오프닝의 나레이션에서부터 등장하여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에메랄드 공주]도 노골적으로 이 영화가 현실이 아니라 동화임을 일깨워준다. [푸른 이끼]가 동화라면 아이들을 위한 동화일 리는 없으니, 성인들을 위한 동화인가? 그렇다면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이하 판의 미로) 같은 영화가 [푸른 이끼]의 대척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판의 미로]는 잔인한 현실을 피해 동화 속으로 도피한 소녀의 이야기로, 마치 동화 같이 보이지만 현실을 말하고 있는 영화고, [푸른 이끼]는 반대로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동화다. 아무래도 관객들은 동화와 현실이 있다면 동화를 더 빨리 잊게 되지 않을까? 취향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푸른 이끼]가 [판의 미로]처럼 날카롭게 관객들의 폐부를 찌르지는 못하는 것 같다. [판의 미로]를 본 관객들은 그 영화에서 벌어진 잔인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당시의 역사로서 아프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푸른 이끼]에서 그런 것을 얻을 수는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더라도 [푸른 이끼]를 실패작으로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여문락이나 사설아 같은 배우들의 연기도 좋으며, 아름답고 인상적인 장면들도 있었다. 영화의 메시지도 앞에서 말한 것처럼 통렬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울림이 있고. 개인적으로는 조직에서 위장 잠입한 경찰을 나중에 어떻게 다루는지 알 수 있었다는 점이 나름대로 소득이었다. 재미있는 장면이 있는데, 아장의 상관(증지위)은 아장과 함께 밥을 먹다가 AV(Adult Video)가 뭐냐는 아들의 질문을 받자 오디오-비디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아장에게 하는 말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아이들에게 가르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화 같은 아이들은 그 비참한 현실을 똑똑하게 목격하게 된다는 점이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픈 점 아닐까?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고 구김살 없이 살아가는 건 아니다. 영화의 제목인 [푸른 이끼]는 거지의 말에서 나왔는데, 자기 엄마가 말씀하시길 나무는 크면 베이게 되니 나무로 자라지 말고 푸른 이끼처럼 살라고 했다는 것이다. [푸른 이끼]는 돌멩이에 붙은 이끼처럼 비천하지만 끈질기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린,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