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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코마 (救命; Koma,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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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 (救命; Koma, 2004)

감독 : 나지량
출연 : 임가흔, 이심결, 허지안, 황호연 


  친구의 결혼식이 끝난 후 즐거운 기분으로 마신 술에 만취한 풍자청(이심결)은 손령(임가흔)이 호텔을 배회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 후 한 여인이 피범벅이 된 채 뒹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다섯 번째로 일어난 신장 도난 사건이었다. 자청은 자신이 호텔에서 목격한 손령을 용의자로 지목하지만, 손령은 자신이 자청의 애인인 위민(허지안)과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위민은 어머니의 치료비가 필요한 손령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녀와 관계를 맺었는데, 손령에 따르면 자청이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한 것은 그 보복이라는 것이다. 곧 풀려난 손령은 자청의 주위를 맴돌며 그녀를 협박하고 괴롭히지만 손령이 신장 강탈범으로부터 자청을 구해준 뒤 둘의 관계에 변화가 생긴다.
손령과 자청은 모든 면에서 반대되는 사이이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손령은 어두운 성격의 소유자로, 청소부로 일하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된 뒤 혼자서 어머니를 돌보며 살아왔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자청은 구김살이 없지만 단순한 성격에다 자립심이 떨어지며, 만성 신장병 환자이기도 하다. 모든 면에서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이제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우정을 나누기 시작한다.

  [코마]는 두 여성의 애증어린 관계를 중심으로 아주 유명한 도시 전설인 신장 강탈 이야기를 섞은 영화다. 이 도시 전설은 낯선 여자의 유혹에 빠져 하룻밤을 보낸 남자가 다음 날 일어나보니, 그 여성은 사라지고 자신은 얼음 욕조에 누워있더라는 이야기이다. 여자가 약물로 남자를 잠재운 뒤 신장을 빼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신장 수술은 아주 어려운 수술로,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춘 병원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의사의 손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용케 적출을 한다 해도 장기는 아무한테나 이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매자를 구하는 것 역시 아마추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범죄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장기 매매가 주된 소재로 등장하는 [복수는 나의 것] 같은 영화도 있으니, 도시 전설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서 영화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영화가 갈팡질팡한다는 것이다. 자청과 손령은 원수였는데 친구가 되었다가 다시 원수가 되었다가 또 친구가 되었다가... [코마]의 이야기는 중심을 갖고 움직이지 못하고 있으며, 감독이 그때그때 상황이나 인물의 관계를 뒤집기만 하다가 끝을 냈다는 생각이 든다.

  [코마]의 결말이 상투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결말만큼은 꽤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의 결말에 납득하는 관객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많은 관객들이 보면서 웃음을 터뜨렸으니까. [코마]의 결말은 손령의 풍자청에 대한 소유욕이 구현된 것인가, 증오가 구현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준 친구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보은? 손령의 감정은 이해하기 어렵고, 따라서 관객들이 그 결말을 보면서 (감독이 관객들이 느껴주기를 의도한) 어떤 감정을 갖기도 어렵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전개가 갈팡질팡하고 캐릭터도 설득력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좋으니 희한한 일이다. 손령이 어머니를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는 장면에서의 연기는 굉장히 근사하다.
캐릭터에 설득력이 없다는 점과 관련해서 자세하게 얘기를 하고 싶은데, 손령과 남자들의 관계를 보면 그런 점이 잘 드러난다. 손령이 자청과 친구가 된 뒤 위민, 손령, 자청이 식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손령은 바로 그 후 위민에게 강간을 당하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위민의 잘못이지 손령의 탓은 아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오히려 위민이 ‘넌 너무 쉬운 여자’ 운운하며 손령을 비난하고 있으며, 손령은 그런 위민의 비난에 대꾸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손령이 위민을 유혹했고, 위민은 그 유혹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물론 손령이 위민을 유혹하는 장면은 그 장면 앞뒤로 계속 등장하지만 그렇다면 굳이 그 강간씬을 집어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손령의 캐릭터는 일관성 없이 인격적인 모멸을 당하는 희생양이 되기도 하고, 애인 있는 선배를 유혹하는 악녀가 되기도 한다. 감독이 국면을 전환하려 할 때마다 캐릭터가 흔들리는 것이다. 게다가 손령이 굳이 곽병강(황호연)을 두고서도 위민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자청이 도끼를 들고 문을 부수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웃은 것도, 지금까지 그렇게 연약하고 나약해보이던 자청이 [샤이닝]의 잭 토랜스처럼 구는 게 황당해서 그런 것 아닌가.

  어쨌든 [코마]는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서도 웃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짜증이 아니라 웃음이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코마]에서 괜찮은 것은 주연 배우인 임가흔과 이심결 뿐이다(덧붙이자면 여형사 역으로 잠깐 등장한 배우도). 두 배우의 팬이라면 이 영화를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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