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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프로텍터 - 威龍猛探: The Protector,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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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잡담으로 시작하자면, 나름대로 성룡의 팬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오랜 동안 보지 않은 영화가 한 편 있다. 바로 성룡이 세계시장을 노리고 야심차게 만든 <프로텍터 - 威龍猛探: The Protector, 1985> 다. 몇 번이나 보려다가 포기를 했으니 정확히는 보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이상하게도 영화가 시작하고 10분을 넘기지 못했다. 그것도 늘 같은 장면에서 멈추게 됐다. 그러니까, 화물 트럭이 통째로 도둑맞는 도입부 이후, 뉴욕 경찰 빌리 (성룡) 가 파트너와 식당에 들르는 장면에서부터다. 갑자기 들이닥친 무장 강도에 맞서 성룡이 총을 쏘아 죽이는 데 그게 참 낯설었다.


   마치 성룡이 오우삼 영화의 주인공처럼 총을 난사하고 악당들의 몸에 총구멍이 나면서 벽에 피가 튀기고 하는 것들이 영 적응이 되질 않았던 것이다. 아직은 오우삼이 <영웅본색> 을 만들기 전이니 샘 페킨파의 영향을 받은 월터 힐의 <롱 라이더스> 나 <48시간>, 혹은 <더티해리> 에 더 가깝겠지만, <프로텍터> 의 초반부는 이제껏 보던 성룡 영화가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프로텍터> 는 죽도록 얻어터져도 오뚜기처럼 일어나 다시 싸우는 성룡의 영화들이 폭력을 무의식적으로 연성화 한다는 비판이 소용없을 만큼 노골적이다.


   골든 하베스트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만들어진 <프로텍터> 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모양새를 취한다. 성룡은 웃음기를 거두고 대니 에일로와 짝패를 이뤄 마약밀매조직을 소탕하는 정의감 강한 뉴욕 경찰을 연기한다.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은 다국적으로 꾸며졌으며 배경 또한 미국과 홍콩이다. 앞에서 잠깐 얘기한데로 폭력묘사는 꽤 자극적이다. 성룡의 유머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굳이 분류하자면 <중안조>, <뉴 폴리스 스토리> 같은 범주에 속하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성룡이 이런 선택을 하게 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성룡은 <취권> 이후 연이은 성공으로 아시아에서는 스타가 되었지만 서구에서 이소룡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쿵푸스타를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도 그랬다. <캐논볼> 시리즈와 <베틀 크리크> 의 신통찮은 반응은 성룡만의 독자적인 캐릭터를 누그러트리면서 좀 더 국제적인 규범의 영화를 만들어 내는 게 효과적이란 판단을 이끌어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완전한 성인 취향의 액션영화로 만들어지길 원한 감독과 기존의 캐릭터를 손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던 성룡은 촬영 도중 큰 의견대립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결국 성룡은 재촬영과 편집으로 인터내셔널 버전과 다른 결과물을 내놓게 된다. 대표적으로 엽천문의 역할이 그렇다. 엽천문이 연기한 샐리는 빌리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미국으로 도피하는 배역인데 홍콩판에만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작부터 고유의 정체성 따위가 중요하지 않았던 <프로텍터> 의 운명은 성룡이 연기한 빌리 왕이라는 극중 캐릭터와 유사해 보인다. 빌리는 패션쇼장에서 로라 (소운 앨리스) 가 납치당한 사건이 홍콩의 마약밀매조직과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파트너 카로니 (대니 에일로) 와 함께 홍콩으로 급파된다. 그는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홍콩 사람들에게 노골적으로 이방인 취급을 당하지만, 어떤 자각도 하지 않는다. 빌리는 중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거의 무국적자처럼 보인다. <프로텍터> 는 주인공의 국적과 피부색을 따지지 않는 버디액션영화의 신기원을 창조한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아 보여서 문제다.


   <프로텍터> 는 동양의 액션 스타가 서양의 스타일로 영화를 만든다는 기본적인 아이디어에서 더 나아갈 여지가 없는 영화다. 성룡의 장기를 거의 없애고 할리우드의 액션영화가 되고자 했던 <프로텍터> 는 무작정 쏘아대는 총격전으로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동양과 서양의 두 경찰이 홍콩으로 건너와 범죄조직과 맞부딪힌다는 이야기 자체도 그다지 좋지 못해서 성룡을 비롯한 모든 배역은 왜 나오는지도 불분명하다. 그냥 무의미하게 낭비되기만 한다. 대니 에일로는 상반된 캐릭터가 충돌하고 협력한다는 장르의 법칙에 의해 캐스팅 되었겠지만, 종종 아무 말도 없이 자취를 감추며 성룡은 단독 행동을 일삼는다. 당연히 짝패를 이루는 오소독스한 재미도 전혀 없다. 그 와중에 뜬금없이 아프리카 용병이 끼어들고 홍콩 경찰의 고위직은 악당과 한 패가 된다.


   액션을 다루는 것에서도 빈약함을 드러낸다. 단순히 성룡만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아서가 아니다. 전반적으로 질이 좋지 않다. 초반부에 뉴욕만을 가로지르는 보트 추격전에서부터 참 액션을 볼품없게 찍는구나, 라는 생각이 확연히 드는데 그런 느낌은 쭉 유지된다. 총을 쏘고 자동차가 뒤집어지고 스턴트를 하는 액션은 고속촬영을 남발하기만 하지 리듬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오밀조밀 모인 배와 배 사이사이를 날고뛰는 성룡 특유의 동작에서도 활기가 느껴지질 않는다. 둔중하기만 하다. 성룡이 완전히 뒤집어엎은 홍콩판에서도 문제는 남는다. 아무리 새로운 각본가를 고용해서 재촬영과 편집을 했다 해도 부실공사의 흔적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고 성가반이 만들어 낸 액션은 전체적인 분위기와 동떨어져 보인다. 두 가지 판본을 비교해 봐도 <프로텍터> 는 영화의 모든 부분이 어색하게 충돌하기만 한다. 억지로 성룡을 지워낸다 해도 변함이 없다.


   잘 알려진 대로 성룡은 <프로텍터> 이후 완전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할리우드에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는 대신, 아이디어를 차용하여 자신만의 장점들을 갈고 다듬는다. <홍번구> 로 박스오피스 1위를 하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지만 결국 중요한 건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성룡이 할리우드를 따라할 수는 있어도 결코 할리우드가 성룡을 흉내 낼 수 없다는 단순명쾌한 사실 말이다. <프로텍터> 는 성룡 (과 골든 하베스트) 에게 뼈아픈 교훈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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