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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회변백(灰變白)──Laughing哥 현상에서 홍콩영화 속 와저(臥底)의 뿌리까지


1. 이 글은 홍콩영화평론가협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좌담회를 번역한 글입니다. 본 글은 감상을 목적으로 거칠게 해석된 글이며 언제든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군데군데 저도 이해하지 못한 채 해석한 부분이 다수 있습니다.


2. 와저 : 〔방언〕 (내통하기 위해) 숨어들다. 잠복(潛伏)하다.  (출처 : 다음 중국어 사전)
스파이 간첩 언더커버 등 여러가지 단어를 생각해봤으나 그냥 와저로 표기합니다. 광동어 발음을 모르는 관계로 한국어 발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3.  이 좌담회에서 드라마 이야기는 생략했습니다. '와저'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내용의 상당부분은 이동승의 걸작으로 유명한 [문도]입니다. 마약이 나오고 수위가 세다는 말을 들어서 아직까지 안 본 영화인데 볼까 고민이 되긴 하네요. 제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부분은 임의로 굵게 표시했고요. 이 좌담회의 재미는 해답을 주지는 않지만, '왜 그 작은 홍콩 땅이 배경인 홍콩영화에는 뭔놈의 경찰/조직/와저가 그리 많은가, 옥상에서 저렇게 만나는데 왜 걸리지 않나!' 라는 평소 제 의문이 거론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신분'이란 틀로 와저를 분석하는 건 의미없다고 단언한다는 점도 재밌고요.



회변백(灰變白)──Laughing哥 현상에서 홍콩영화 속 와저의 뿌리까지


일시:2009년 4월 22일
출석:张伟雄(雄)、冯若芷(芷)、陈志华(华)、郑政恒(政)、朗天(朗)



朗:TVB 드라마 [학경저격(學警狙擊)]이 만든 Laughing哥 열풍이 대단하다. 2년전 우리는 <금천> 잡지에서 와저(卧底)란 주제로  [변연인(邊緣人, 1981)]부터 [와호(臥虎, 2006)]까지 토론했다. 지금 우리가 보충할 게 더 남았나?

芷:시작하기 전에 질문 있다. 고룡의 무협소설에 '와저'란 명칭이 나오나? 당시에는 뭐라고 불렀나?

政:첩자?

朗:[다정환(多情環)]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청룡회가 있기에 와저일을 하는 것이다. 구월 구일 하늘을 빙빙 돌면서 구천으로 올라간다." 당신이 말하는 와저도 여기에 해당 가능하다.

雄:under-cover는 안된다는 건가?

芷:와저란 무엇이고 스파이가 무언지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장르가 가진 가장 순수한 형식이 뭔가. 현재 우리가 보는 영화속 와저와 스파이 캐릭터의 순수한 형식은 모두 변했거나 발전한 상태다. 양자에는 분명 가장 기본적인 형식이 있다.

朗:당신 생각은 어떤가?

芷:그때 좌담회에서 정의가 먼저 필요하다고 봤다. 당시 우리는 만약 '포스트 와저영화'가있다면 [와호]가 이 기준에 맞다고 봤다. 현재 시각으로 보면 [무간도3]이 (와저는) 전진만 있는 임종 직전의 상태라면[흑백도(黑白道, 2006)]는 도약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비교해보면 [무간도3]과 [흑백도]야말로 와저 영화의 종착점이다.


朗:그 다음에 [문도(門徒, 2007)]가 있잖나?

芷:당시 장위웅은 [문도]에 매우 흥분했었다. 오늘 내가 발견한 건, [문도]에서 다시 reset됐다는 거다. 수 년에 걸친 와저에 대한 시각이 종점을 찍고....[문도]에서 reboot한다.

雄:토론 대상에 꼭 넣어야할 작품이 있는데 바로 [상처받은 도시; 상성(傷城, 2006)]이다. 이 작품은 자아 와저에 대한 영화다. 비록 [상성]에 경찰 임무가 등장하진 않지만 주제가 복수이고 , 유위강`맥조휘`장문강 세 사람의 합작으로 탄생한 작품이기에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무간도3]을 계승한 진일보한 작품이 아닐까? 결과적으로 [상성]은 고룡 식 와저에 호응하며 별전이 됐다.

芷:내가 명쾌하게 말하겠다. [문도]와 Laughing哥와 손홍뢰의 드라마 [잠복(潛伏)] 모두 와저를 reset한 작품들이다. 그러나 와저를 reset했어도 여전히 와저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반드시 그 특수공작원이나 스파이에 물음표를 붙여야 한다.

朗:더 명쾌하게 말해달라.

芷:그 작품들의 reset은 와저를 「白」으로 변화시켰다는 거다. 홍콩영화의 전통에서 와저의 임무 성격은 흑도(黑道)와 백도(白道) 사이에 있었는데, '모호'와 '모순'의 경계 덕에 와저 자체는 '회색(灰)'이었다. [문도]의 아력과 [学警狙击]의 Laughing哥에는 시종  灰 와저와 白 와저의 구분이 있다.  灰 와저에는 경찰이 도둑으로 둔갑해 도둑에 대한 감정을 느끼는 [용호풍운(1987)]같은 작품이나, 와저 자체는 흑도(黑道)에 대한 별 감정이 없는데 백도(白道) 로 오해받아 살해당하는 [변연인]이 있다. 白 와저의 경우, 백도(白道)는 전력으로 이 와저를 지지, 필요할 경우 그에게 원조하기도 한다. 이 와저 자체는 흑도(黑道)에 감정을 느낄 수 없고 따라서 자신의 임무에 큰 차이가 없다. 이런 와저가 007이다.

华:[문도]의 결말은 사실 그다지 하얗지 않잖나.

雄:[변연인]도 사실 미완성 와저 영화이다. 와저로 활동하던 경찰이 농부들의 오해로 맞아 죽으니까.

芷:그건 [칠협사의]다.

雄:그래서 [변연인]은 그런 분석틀에는 불완전하고 다른 분석틀을 찾아야 하는 작품이다. [문도] 이야기로 돌아가자. 첫째, [문도]는 이질성을 가졌는데 유덕화가 영원히 내면에 강호영화의 전통을 가진다. 둘째, 유덕화와 장정초의 첫사랑을 실패로 만든다는 것. 셋째, 오언조가 경찰 제복을 입은 채 마약을 흡입한다는 것. 우리는 분명히 안다. 이 와저가 제복을 입었다는 건? 그가 오염됐다는 의미다. 또 영화 결말 부분 여동생이 여기서 오언조가 있는 저쪽으로 뛰어가는 데 '천태; 이하 옥상(天台)'이 양쪽을 연결하며 삶을 지속한다는 다리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朗:옥상의 상징성에 덧붙일 것 있나? 홍콩영화는 천태의 상징성에 각별한 애정을 표현한다. [천태적월광(天台的月光, 1993)], [천장지구(1993)], [암전1,2], [무간도]에서 [뉴 폴리스스토리] 등 모두 다채로운 상징성을 발휘하고 있다.

雄:최초에 옥상은 홍콩 영화에서 농후한 보헤미안 분위기를 표현했는데 [천태적월광]이 그 예다. 시간이 흐르자 캐릭터가 옥상에 오르면 도망치지 못하고 죽는다는 걸 의미하게 된다. 97 이전 袁洁莹이 옥상에서 투신자살하는 장면([음양로3])의 상징성은 엄청나다. 1997년에 종결이 되는데, 홍콩영화 속 唐楼(건물 이름. 아래 사진) 옥상은 우리에게 이화(異化)된 상황을 보여준다. 97후 유위강과 두기봉은 꼭 唐楼 옥상에서 벗어난 것 같다. [무간도]와 [암전] 등의 작품에서는 상업빌딩 옥상으로 올라간다. 이런 옥상들은 보통사람들이 갈 수 없는 곳이다. 두려움을 초월한 듯한 얼굴로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표현해낸다.


朗:결과적으로 같은 것 아닌가, 죽음이라는?

雄:그래서 [문도]와 [노항정전(老港正傳, 2007)]은 다시 唐楼 옥상으로 돌아가 일부러 옥상에 새로운 의미-생사 선택이란 중요한 문제에 답안까지 제공하는 - 를 부여한다. 난 처음 봤을 때 [문도]에서 고천락을 모함하는 오언조가 도덕적으로 타락했다고 봤는데 다시 보니 와저의 회귀를 다룬 영화였다.

政:[뉴 폴리스 스토리]에서 옥상은 오락장이다.

雄:다시 고천락을 오언조가 모함하는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건 와저가 가진 권리다. 영화를 다 보고 冯若芷에게 전화로 "와저영화의 와저가 get the job done 한 것"라 말했다. 그 이후 [도화선]에서 와저인 고천락은 맞아죽지 않고 오히려 풍부한 희극감을 표현해내 관객들에게  [오복성(五福星)]의 冯粹帆와 [도학위룡]의 주성치를 연상케 한다. 코메디로 와저의 비극감과 모순을 해소한 것이다.

芷:[문도]에서 오언조 캐릭터는 무척 중요하다. 그가 연기한 아력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백색(白色) 와저였다. 그는 유덕화를 좋아하지 않으며 유일하게 끌리는 건 마약일 뿐이다. 예전의 와저에는 포장이 너무 많았다. 죽거나 미치는 게 결말이었다. [문도]의 오언조가 이런 선배들보다 더 전문화됐다.

雄:그래서 임무를 완성할 수 있었겠지.

芷:나는 [문도]가 이미 와저를 부분적으로 reset했다고 본다.

朗: 부분적 reset?

芷:[문도]가 와저란 캐릭터를 완전히 reset하지 못한 이유는 극 중 욕망의 대상과 대입위(代入位)가 조화롭지 않기 때문이다. 오언조가 연기한 아력은 서사자에 불과하다. 욕망의 대상보다 비밀이 많아 관중은 감정이입이 어렵다. 영화 속 욕망의 대상인 유덕화는 자살로 자신을 비극적 영웅으로 만든다. 컴퓨터로 비유하자면 [문도]는 reset한 것 같지만 이전의 기록을 소멸시키지는 못했다.


华:그건 와저가 특수임무로 돌아갔기 때문인가?

芷:특수임무란 정치이며 국가다. 와저는 강호고. 장르물에서 특수임무는 백(白)이고 와저는 회(灰)이다.

- 드라마 이야기 생략


朗:홍콩영화의 전통에서 와저의 회색은 어디서 온 건가? 지난번 우리가 토론했을 때 정(情)과 의(義) 사이의 갈등과 신분으로 봤었다. 80~90년 대 초기 와저 영화 속 와저가 마주한 주요 모순은 충의 혹은 정의란 문제였지만 97 이후 신분 문제로 변했다.

芷:나는 두 가지가 상충한다고 본 적 없다. 정과 의 사이 갈등이란 표면적 해석이고 신분 상충 경우는 배경맥락적 해석일 뿐이다.

雄:그러나 대다수 홍콩영화는 정치적이지 않다.

政:나는 [문도]와 [도화선]이 더이상 신분 문제의 각도에서 해석하는 걸 어렵게 만드는 데 쐐기를 박았다고 본다. [문도]의 유덕화 캐릭터는 부정적 인물인데, 홍콩의 아이콘인 유덕화가 연기했다. 반면 오언조가 연기한 아력은 outsider인데도 영화의 주인공이다.

雄:(웃음) 백지 한 장 가지고 들어온거지.

政:내 말은, 신분이란 배경맥락 틀에서 본 영화사회학적 분석은 [문도] 이전에 이미 효력을 잃었다는 거다.

朗:그럼 우리는 텍스트 연구로 돌아가야 하나? 고룡 각색 영화의 시작에서 스파이물의 발전, 와저 영화와의 관계 등등.

芷:난 심지어 고대 그리스 비극으로 돌아가 [무간도3]을 다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어쨌든 문제는 시종 이거다. 왜 와저는 홍콩 영화의 장르가 된걸까? 왜 영국에 007이 있다면 홍콩에는 와저가 있을까? 이 질문은 '왜 미국에서만 히어로 코믹스물과 영화가 발전한 걸까?'란 질문과 같다.


朗:누구는 홍콩인의 처지를 이유로 들거다. 중간에 낀 상황 말이다. 중국과 영국 사이의 거시적 정치 상황에서 지금은 본토(홍콩)와 내지(대륙) 사이. 미시적 시각으로는 가정과 사업 간, 본처와 첩 사이.....일련의 젊은이들이 내게  Laughing哥가 그들에게 느와르물로써 감동을 준 부분은 '삶의 와저'란 상황이었다고 말한다.

雄:그러나 중간에 낀 사람은 대다수 사회에 존재한다. 일본에서도 오타쿠로 표현하지 않나?

朗:최근 와저 소재를 표현한 외국 영화가 무척 늘었다. 심지어 2009년 여름은 와저의 세계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芷:[해리포터] 신편을 말하는 거군. Half-Blood Prince는 꼭 또다른 변연인 같다.

朗:이번 좌담회의 결론은?

芷:결론이라. 어쨌든 내가 말하고 싶은건, 새로운 007조차도 회색으로 변하며 전세계가 모두 '회(灰)'로 기울어지고 있는 이 때, 왜 홍콩은 '백(白)'을 추구하냐는 거다.

朗:맞다, 그 부분이 재미있으면서 의미심장한 거지. 모두들 좌담회는 여기서 끝내고 영화나 보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