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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금상장의 빛나는 순간들 (1)

1981년 11월 영화 잡지 <전영쌍주간>의 회의실. 그 해의 홍콩영화 10편, 외국 영화 10편 선정에 대한 회의를 하다 편집장이 말한다. "이걸 더 크게 해보면 어떨까?"
올해로 28회를 맞는 홍콩 금상장의 시작은 이렇게 간단했다. <전영쌍주간>은 홍콩방송국과 합작으로 1982년 3월 9일 시상식을 여는데, 이 당시만 해도 상은 5개 부분에 불과했고 후보 없이 바로 발표했다.


1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혜영홍.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2회에 이르자 수상 부분은 많아지고 후보 지명도 생겼으며 영화인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호응을 끌어냈다. 2회 금상장은, 당시 흥행순위를 점령한 <최가박당>과 <오복성> 같은 상업영화 대신 뉴웨이브의 허안화를 선택했다. 

2회 감독상 허안화 : "죽음을 무서워하지 말고 영화를 찍으라고 가르쳐주신 호금전 감독에게 감사하다"

2회 남우주연상 : 맥가와 홍금보

4회 남우주연상 이수현 : "주최측과 심사위원단에게 감사하다."

80년대 홍콩 영화의 주요 시장이었던 대만은 대륙에서 촬영한 영화 말살 정책을 실시한다. 때문에 대륙에서 촬영된 홍콩 영화의 상당수 스텝들은 가명을 썼는데, 4회 때 장숙평은 자신이 상을 탈지 모른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당시 장숙평은 '장숙병(章叔屛)'이란 이름으로 <사수유년>에 참여, 결국 미술상을 가져간다. 사회자가 몰래 장숙평에게 만약 상을 타면 단상에 올라 뭐라 할 꺼냐고 묻자 장숙평은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사회자가 바로 가르쳤다. "장숙병을 대신해 모두에게 감사드린다고 해야지!"

4회 미술상 장숙평 : "장숙병을 대신해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5회 작품상 <폴리스 스토리> : "이 상을 탈 수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다"

6회에서 9회까지는 연속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주윤발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988년 주윤발은 세 편의 영화 - 용호풍운, 가을날의 동화, 감옥풍운 - 로 후보에 올라, <용호풍운>으로 주연상을 수상한다.
7회에서는 임영동이 <용호풍운>과 <감옥풍운> 두 편으로 감독상 후보에 올라 <용호풍운>으로 수상한다. 이는 그때까지 문예물이어야 수상할 수 있다는 통념을 깨부순 것으로, 오우삼이나 맥당웅이 이르지 못한 지점이었다. 이 때를 시작으로 금상장은 변화를 시작, 더 많은 장르물 감독들이 수상대에 오르게 되고 홍콩 영화의 인재가 확대되는 계기가 된다.



6회 작품상 <영웅본색> : "우리 이 기쁨을 모두 함께 누립시다!"


7회 남우주연상 주윤발 : "정말 의외다, <가을날의 동화>(에서 내가 연기한) 주인공이 <용호풍운>에 질 줄이야!"

7회 감독상 임영동 : "사장님, 제가 탔어요!" 







* 여력이 되면 다음에 계속.......-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