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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여성의 가출과 귀가 ── 홍콩의 10대 여성 감독

1. 이 글은 홍콩영화평론가협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좌담회를 번역한 글로, 2008년 글을 지금 해석한 건 최근에서야 글이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주로 종이잡지를 내는데 온라인 업데이트가 너무 느린 곳이예요. 이 협회에서 연말에 주는 상이 홍콩영화평론가협회 상인데, 이쪽 상이 금상장보다 더 믿음이 가는 상입니다. 매회 발간하는 회지를 구해보고 싶은데...쩝. 


2. [여성의 출조(出走)와 회가(回家)] 라는 원문 제목을 그냥 출조와 회가로 할까 하다가, 가출과 귀가로 바꿉니다. 협소한 의미로'만' 해석될 우려가 있긴 하나 읽기에는 이쪽 단어가 더 편하니까요... 


3. 다수의 역자 주(작은글씨)가 들어갑니다. 


4. 본 글은 감상을 목적으로 거칠게 해석된 글이며 언제든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5. 홀수를 좋아해서 어쩔 수 없이 5를 갖다붙입니다. 



 여성의 가출과 귀가 ── 홍콩의 10대 여성 감독


날짜:2008年12月14日 

참석자:张伟雄(雄)、纪陶(纪)、朗天(朗)、陈志华(华)、郑政恒(恒) 


朗:오늘 우리의 토론 주제가 '여성'인데 여자 회원은 한 명도 안 왔다. 남자회원들이 토론하는 게 더 낫다는 게 그들의 의견이었다. 오늘의 제목인 '여성의 가출과 귀가'는 영화적 관점에 불과하다. 작년 입센 사후 100주년을 기념해 중국인 사회에서 많은 기념활동이 열렸다. 그 중 여러번 공연된 작품이 <인형의 집>이다. 극 중에서 집을 나가는 노라에 대해 노신이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집을 나간 노라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던가, 타락하던가." 2008년의 홍콩 영화를 보면 우리의 여자들은 집으로 돌아온 걸까.....

- 소설가이면서 유명한 산문가이기도 했던 노신이 자신의 글에서 노라가 남편옆의 인형같은 삶에서 벗어나 집을 나가는 걸로 <인형의 집>은 끝나지만 당시 시대 상황에서 집을 나간 노라가 할 수 있는 건 다시 남편 옆으로 돌아오던가 매춘부로 전락하던가 두 가지 밖에 없다고 한 유명한 글을 가리킴


雄:집으로 돌아온 여성을 말하려면 허안화의 여성을 빠뜨릴 수 없다. 여인 삼십(허안화의 대표작 중 한 편인 [여인, 사십] 제목을 연상케하는 단어 의도적으로 사용)에 그녀는 [금야성광찬란(今夜星光燦爛, 1988)]을, 여인 사십에 [여인, 사십(女人, 四十 1995)]을 찍었고, 현재 여인 오십에 그녀는 또 [이모의 포스트모던 라이프(姨媽的後現代生活)]와 [천수위의 낮과 밤(天水圍的日與夜)]을 만들었다. [금야성광찬란]에서는 꿈의 실현을 위해 어떻게 인생과 사회의 관계를 조정하는지를 그렸다. [여인, 사십]에서 허안화는 시아버지의 치매, 가정의 붕괴에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를 통해 마지막에는 자신의 인생을 마주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모의 포스트모던 라이프]의 재밌는 부분은 이모가 퇴원후 딸(조미)에게 "게를 먹고 싶다"고 한 부분 빼고는 사실 어떤 발언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모는 동북 지역의 남편 옆으로 돌아가는데 어떤 시선인지 두 가지 면에서 볼 수 있다. 관객은 이모가 다시 무식한 남편과 사는 새장으로 돌아갔다 볼 수 있고 혹은 달빛의 감화를 받아 많은 걸 내려놨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여성의 성장과 발전을 논한다면 [천수위의 낮과 밤]을 꼽게 된다. 나는 그 영화에 나온 2장의 사진 - 공장의 여공, 유원의 가을밤 - 을 보고 너무나 감동받았다. 마치 이번에는 허안화가 지식분자란 포장까지도 내려놓은 것 같았다. 



朗 : 그럼 임애화(林愛華)는 어떤가? 


雄:허안화와 비교하면 X세대인 셈이지. 


朗 : 임애화 역시 자신의 여인이십, 삼십 사십을 찍은 것 같다. [십이야(12夜, 2000)]는 30, [주걸륜을 찾아서(尋找周杰倫, 2003)]는 20, [안나와 안나(安娜與安娜, 2007)]는 임애화의 여인사십인건가? 


雄:가출의 예가 또 있다. 나탁요(羅卓瑤). 게다가 돌아오지도 않고 있다. 허안화와 임애화 사이의 연결고리인가 바로 그녀다. 


华:나탁요는 예전부터 자신이 홍콩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비교적 단절된 상태이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뿌리가 없고 부평초처럼 떠다니는 걸 강조한다.... 


雄:맞다. 나탁요는 좀 "떠다니지." 


恒:가출에서 귀가까지 유유자적.... 


雄:심지어 남편(방령정方令正)까지 데리고 떠났잖나. 

-천도방자의 감독으로도 유명한 남편 방령정과 함께 이민가 버린 사실을 지칭. 나탁요는 올해 [여몽]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朗:장완정이 일찌감치 이민에 대해 이야기([비법이민(非法移民, 1985)])하고 다시 돌아오는 걸 이야기([북경락여로(北京樂與路, 2001)])했다.  


雄:가출 귀가는 사실 엄청 괴이한거다. 왕가위가 미국에서 찍은 [블루베리 나이츠]에 대해 가출인지 귀가인지 말할 수 있나? 팽 브라더스는 어떻고? 


朗:다양한 작가들의 '귀가'가 대중에게 어떤 계시를 주고 있나? 


华:[안나와 안나]의 상황은 사실, 안나의 '신분'이 집으로 돌아왔다 볼 수 있.... 


朗:그건 여성주의 영화의 공식이다. 두 명의 자매나 친구가 있다, 어릴 때 한 명은 외지로 나가 비지니스로 성공한 여성이 되고 다른 한 명은 가정에 남아 남편과 자식 옆에 있다. 몇 년 후 두 사람이 다시 만나 각자 상대방을 부러워하며, 네 보기엔 내가 좋지 내 보기엔 네가 좋아 이러는 거지. 두 여성이 한 명의 인간으로 합쳐진 것에 불과하다. 


雄:출발점은 흥미롭다. 함께 사는 남자는 우울증을 앓는데 서로 악담을 퍼붓지만 폭력적이지는 않고 가정 폭력의 분위기 역시 없다. 그녀가 집을 나간 건 폭력과 학대 때문이 아니라 질렸기 때문이다(fed up). 그녀는 자신에게 묻는다. 왜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그를 보살폈는데도 그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가? 그래서 안나가 집을 나가는 선택에는 '죄'가 있는 것이다. 



华: '무능남'에 대한 선택의 일종이다. 


雄:맞다, 처지가 고전적 여성주의가 마주한 처지와 다르다. 사실 임애화 영화에는 성인남성이 별로 나오질 않는다. [십이야] 역시 성인남성의 세계가 아니다. [주걸륜을 찾아서]에서 제일 성인남성이 오언조였고.... 


纪:우리가 줄곧 토론한 건 여성의 행동이지 신분이 아니었잖나? 


朗:행동이 신분을 창조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행동이 성별까지 창조한다..... 



纪:임애화가 마주한 남성은, '그녀는 남자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 [주걸륜을 찾아서]의 여자가 무한(武漢=冇漢 장소인 武漢은 남자가 없다란 의미의 冇漢과 발음이 같다)에서 왔다. [안나와 안나]에서는 남자가 의지할 존재가 못된다는 걸 분명하게 표현한다. 그래서 여자는 다른 자기 자신을 속이고 집을 나가는 것이다. 그녀의 부정은 남자를 삭제해버리는 거다. 허안화가 낙엽귀근이란 세계에 기댄다면 임애화의 태도는 철저한 이별이다. [십분종정(十分鍾情)] 가운데 임애화가 연출한 부분 <구산정도(舊山頂道)>의 남자(사군호)의 재출발하자는 말에 여자(묘예니)가 OK한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OK는 사실 남자를 어린왕자로 보고 있는 것 뿐이다. 어린 왕자는 진정한 남성이라 할 수 없다. 임애화의 세계에서 남성은 자리가 없고, 그녀는 더이상 남자가 '무능남'이라 원망하지도 않는다. 허안화가 '폐남(廢男)'을 여전히 앞세운다면 임애화의 여성은 자기 스스로 살아간다는 걸 독립적으로 표현한다. 그가 말하는 '재출발'이란 다시 한 번 꿈을 찾는 것에 불과하단 걸 뚜렷하게 자각하고 있다. 


华:사실 [십이야]도 그랬다. 장백지에게 진혁신이 떠나자 뒤이어 사정봉이 나타나는데 모든게 순환해서 되풀이된다. 


纪:이건 다 도시 여성의 现代姑婆 식 자리 정하기다. 그녀들의 "나에게 남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는 말에는 싱글 생활의 추구를 담고있다. 이런 점이 [愛與狗同行 2008]의 진안기 보다 더 진일보했다. 진안기 역시 남자를 필요로하지 않지만 관객들은 감독인 진안기가 아버지란 형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雄:유일하게 여성주의와 레즈비언의 성애를 융합한 감독이 진안기라 말할 수 있다. 20년 전의 작품 [애정미어(愛情謎語, 1988)]에서 종초홍이 교수인 엽동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은 분위기가 매우 성적이었다. 형식면에서 여성주의를 돌파한 작품은 홍콩에서 매우 드물다. 그러나 적어도 임애화는 영화를 찍는 방법이나 서사의 구조 면에서 주류 남성중심의 서사 형식을 타파하려 노력한다. 


纪:임애화의 특징은 레즈비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남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녀의 영화 속 여성주위에는 남자들이 빈번하게 등장하지만 구별이 안간다. [안나와 안나]의 안나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그저 병든 남자 옆으로 돌아간 건데, 마치 자아를 갈고 닦은 후 다시 나갈 것 같다. 그녀에게 어린왕자가 있지만, 그의 꿈은 이 세계가 아닌 먼 곳에 있다....허안화와 비교되는 부분이 바로 임애화의 여성들은 일하는 여자의 특징까지 가지고 있단 거다. 


朗:왜 레즈비언 연애담을 연결시키나? 


纪:왜냐면 때로 레즈비언 영화로 오해를 받으니까. 가령 [92 흑장미 대 흑장미]의 황운시와 풍보보는 함께 생활하는 관계지만 레즈비언이 아니다. Twins의 채탁연과 종흔동 역시 이런 관계다. 그래서 Twins가 출연한 [견습 흑장미(見習黑玫瑰, 2004)]란 제목은 참 적절하다. 


雄:우리는 형식면에서 임애화를 중요하다고 보지만, 내용면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纪:예술면에서도 중요치 않다. 단지 속문화(俗文化)와 지역문화적 각도에서 봐야 임애화는 특이 케스이다. 영화계가 곤충세계로 바뀐건가? 


朗:맥완흔(麦婉欣)도 있다. 그녀의 영화 [꺼거(哥哥, 2001)]와 [나비(蝴蝶, 2004)]도 동성애가 소재다. 



纪:집을 떠나 길을 찾는 여성이란 관점에서 보면 [나비] 는 분명하다. 영화 말미 전원과 하초의가 베란다에서 신발을 교환하며 "당신이 길에 오르지 않으니 내가 출발할까?"라 묻는데, 나는 그녀가 사저인 허아서(許雅舒)와 비슷하다 느꼈다. 


朗:[열일당공(烈日當空, 2008)]의 감독 맥희인(麦曦茵)도 허아서의 학생이다. 


雄:허아서 제자들의 작품은 무척 재밌고 아주 여성주의적이다. 


纪: [나비] 는 선배들의 전작의 그림자가 무척 많은 영화다. [천언만어(千言萬語, 1999)]나 [경성지련(傾城之戀, 1984)]도 보이는데 참 허안화스럽지. 그래서 맥완흔은 사실 copy lady인 거지만, 선배들로 자신을 바꿨고 선배들의 길을 자신의 길로 바꿨다. 雄:[열일당공]도 이런 경향이 뚜렷하다. 


纪:맞다. [열일당공]의 세계는 감독의 세계가 아니라 수집된 자료를 통해 이식된 세계다. 그녀들은 주류에 진입해 마치 메뚜기처럼 다른 사람걸 먹어치우며 자신을 완성했다. 그래서 오늘날 영화계는 곤충세계인 거다. 팽호상 역시 다른 사람 걸 자신의 작품에 녹여내는 감독이다. 그들의 자아는 비교적 약하고 그닥 민감하지 않지만, 전대의 영양분을 먹어치우며 자신만의 것으로 완성한 뒤 다시 내려놓는 거지. 


朗:우리 여묘설(黎妙雪)을 빠뜨리지 말자. 


华:여묘설의 [유리소녀(玻璃少女, 2001)] 역시 (여성의) 가출이지. 


雄:그렇지만 당신은 보자마자 그녀가 집으로 돌아올거라 파악하지 않았나. 


纪:여묘설에게 외부 세계가 없으니까. [연지풍경(戀之風景)]의 임가흔이 가출한 것도 사실 남자친구의 고향으로 돌아간 것 뿐이고 사실 고향을 그리워한 거니까. 




雄:[연지풍경]과 [주걸륜을 찾아서]가 비슷한 시기에 나와서인지 유사점이 많다. 


纪:청도(연지풍경의 배경)와 홍콩 모두 산록이 우거진 산간도시다. 여묘설의 홍콩관은 홍콩섬(구룡인이나 신계인이 아닌)에 속한다 볼 수 있다. 


恒:그녀의 [소심안(小心眼)]과 [지옥 19층(地獄19層)]에서 표현된 大澳와 지옥의 경관에서도 그런 식의 산간도시를 볼 수 있..... 


纪:자신의 세계가 붕괴했으니 재구성한거지. 출조한 후던 출조하지 않았던 세계가 붕괴해버렸으니까. 그녀가 재구성한 고향은 홍콩섬이거나 조경령(調景嶺: 홍콩의 지명)이지... 


雄:실제하는 곳이 아니라 아마 심상이겠지. 


纪:홍콩섬을 홍콩의 상징으로 삼은 거다. 임애화도 홍콩섬 사람이지만 그녀의 영화에서 공간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 이 좌담회에서 제일 재밌는 부분. 홍콩인들이 홍콩섬,구룡반도 출신들의 성향을 구별해서 본다는 시각이 재밌다. 여묘설의 홍콩관 부분은 아마 개발에 의해 달라지기 전 예전 홍콩섬을 그리원한다는 의미로 짐작됨. 



朗:황진진(黃真真)은? 


纪:황진진은 가출(출조)이 아니고 그저 출매(出賣)지. 


雄:황진진도 무척 '떠다니는' 사람이다. [여인나화아(女人那話兒, 2001)]이 여성주의 구조의 작품이나 그녀는 시간이 충분치 않.... 


纪:황진진은 여성을 팔아먹는다고! 


华:황진진이 이익을 추구하는 편이긴 하지만, 영화 창작이나 여성주의를 수단으로 삼은것 뿐이지 팔아먹는것까진 아니다. 


雄:[六樓后座2之家屬謝禮, 2008]에서는 갑자기 세입자 Susie란 캐릭터를 강조해 심도있게 이해시킨다. 앞부분에서 Susie의 위치가 경쾌하게 그려졌는데 이런 변화는 감독이 방랑하는 여성이나 방탕한 여성을 주목한다고 느껴졌다. 늙은 Susie는 전원에서 부드럽게아간다. 물론 이런 관심이 무척 표면적이긴 하다. 


华:[여인본색(女人本色)]에서 황진진은 중국의 정치 풍파를 경쾌하게 갖다 붙인다. 


恒:참, 장애가가 있지! 


纪:그녀야말로 진정 대만에서 가출한 여작가지. 지금은 홍콩 국적을 취득했다. 雄:여성주의란 주제에서 장애가의 작품은 내용면에서 별 차이가 없다. 


朗:여기에 이견 없다. 장애가 영화에서 여성의 성장과 발전은 허안화보다 더 뚜렷하다. [최애(最愛, 1986)] [심동(心動, 1999)], [상비(想飛, 2002)] [20, 30, 40(2004)]까지 성인여성의 성장과정이다. 



纪:장애가가 비록 홍콩에서 영화를 찍긴 했지만 사실 여전히 대만 여성 눈에 비친 홍콩을 그린다. [심동]의 양영기는 홍콩인보다 대만인처럼 보인다. 금성무 역시 대만에서 온 꽃미남이다. 오늘 우리가 다시 본 [해탄적일천(海灘的一天, 1983)]에서 그녀는 타이베이로 와 그 도시속에 융화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시종 고향의 분위기를 유지한다. 홍콩으로 와서는 홍콩의 부평초문화와 융합되 이런 점을 매우 능숙하게 표현하는 작가가 됐다. 


华:임애화 영화에 '남자가 없다'면 장애가는 영원히 '남자가 있는 것' 같다. 장애가의 작품은 부단히 '좋은 남자'를 찾고 있는 것 같다. 


雄:어쩔땐 좋은 아빠이기도 하고 때로는 좋은 남자 만들기에 관심을 두기도 하고. [상비]의 황추생은 혼자 다 하는 것 같잖나. 


纪:장애가의 '좋은 남자'는 식민시대의 홍콩 남자다! 그녀에게 이런 남자는 순주(纯酒)를 감상하길 기다리는 것 같은데, 장애가의 대단한 점은 여기에 있지. [상비]의 황추생이, 신예성 시대 그녀가 가장 좋아한 게 증지위다. 


朗:그렇지만 장애가도 미소년을 많이 좋아한다. [신 동거시대(新同居年代, 1994)]에서 장애가가 연출한 부분 - 오기륭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을 우리가 지금까지 기억한다. [심동]에서는 그녀가 직접 발탁한 소영강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건 홍주(红酒)와 백주(白酒)의 차이다. 당연히 남자나 도시가 장애가 카메라의 대상이 되면 그녀는 속사정에 깊이 몰두해 영화 형식의 우열을 구별해낸다. 그러나 창작주체 면에서 장애가는 대만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외부인 시선을 유지한다. 




 朗:어째 대화가 낯설게 흐르는 것 같은데 좌담회 끝내기 전에 모두에게 질문이 있다. 현재 적지 않은 여성들이 주동적으로 가정에 머무르길 원한다. 그러나 그건 가족을 돌보는 가정주부로서가 아닌 소위 '부녀(腐女)'란 신분이나 형상으로 말이다. 홍콩에도 이런 류의 부녀가 있다고 보나? 


纪:홍콩에는 부녀의 그림자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부녀라 한다. 그러나 부녀가 있으려면 반드시 수준높은 도시, 여성의 독립, 그리고 일종의 소년애에 대한 추구, 미소년에 대한 성을 초월한 초월한 태도가 있어야 한다. 


雄:당신이 말한 姑婆가 그거 아닌가? 


纪:아니다. 소위 홍콩의 부녀란 그저 부녀 신도들일 뿐이다. 일정한 의식을 따라하며 건너온 문화를 숭배하는 거지. 진정한 부녀가 추구하는 데에는 '사내놈'화된 중성 형상이 없다. 그녀들이 좋아하는 섬세한 소남(少男)에 거친 성인남성의 감각은 없고 여성을 침범하지도 않는다. 그녀들의 경향과 이런 소남이 건립한 순수한 교우관계는 세상에 없는 행복과 순애를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