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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해석] 이동승이 말하는 홍콩영화 : ‘메이드 인 홍콩’은 없다

이 글은 2009년 6월 3일 시나닷컴에 올라온 이동승 감독의 인터뷰를 부분 번역한 것입니다. 단순한 감상을 위해 거칠게 해석된 글이며 문제가 발생시 언제든 삭제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 해석은 해석이라는 말이 민망하리만치 대부분 이 오역이라 짐작되니 읽으시려는 분들은 그 점을 십분 감안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 시나닷컴 




이동승이 말하는 홍콩영화 : ‘메이드 인 홍콩’은 없다


 

내가 보기에 심의 쪽은 문제가 아니다. 나 개인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대륙 관객의 입맛을 맞출 방법이 우리에게 없다는 거다.


<신주쿠 사건>은 이동승이 10년을 준비한 영화다. 성룡, 오언조, 서정뢰, 범빙빙이 출연한 <신주쿠 사건>은 홍콩 합작 영화의 조건 - 대륙 배우가 1/3 이상 되어야 한다 - 에 부합하지만, 결국 이 작품은 여러 폭력적인 요소로 인해 국가전영국의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고 대륙 상영이 불가능해졌다.


이동승을 방문할 당시, 기자는 이동승을  북상(北上)을 원하지 않는 태도를 고수하는 홍콩 감독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동승의 걱정은 자신의 영화가 아니라 홍콩 영화계 전체에 대한 부분이었다. 2009년 홍콩에는 진정한 홍콩 자본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없고, 각 영화사들은 1년의 장기휴가에 놓여있다. 이런 현실은 이동승을 매우 실망시킨다. “홍콩 영화는, 창작에서 투자, 감독에서 배우, 제작에서 배급까지 모든 부분이 병들어 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고치지 않는다고 당장 죽는 건 아니지만 결국 죽게 될 거다.”



왜 대륙에서 상영하기 위해 타협하지 않나?

<신주쿠 사건>의 대륙 상영 여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심의에서 산산조각난 편집본은 안된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만둔 거다. 대륙시장을 포기하는 건 아주 간단한 처리 방식이었다.

이 영화의 투자 면에서, 당연히 대륙에서 상영하고 싶었다. 그러나 심의 제도가 작품을 훼손하는 데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다. 가령 두기봉의 <대척료(절대초인)> 대륙판은 관객이 전혀 이해를 못했다. 심지어 어떤 신문에서는 “뭐 이런 거지같은 영화가 금상장을 받았단 말인가.”라고 평하기까지 했다. (대척료는 금상장 작품상 수상)

대륙 시장을 버리기로 결정할 때 성룡과도 상의했다. 나는 성룡에게 만약 우리가 돈 때문에 편집해서 영화를 수출하면 그건 관객을 속이는 거고 명예가 망가지는 거다, 앞으로 어떤 거라도 찍기 어려워질거라고 했다.


대륙에 진출하면서 홍콩 영화에 어떤 득실이 있었다고 보나?

합작물은 홍콩 영화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대륙영화 산업에 미친 이익이 크다. 이전에 우리가 대륙과 접촉을 시작했을 때 대륙 감독들은 ‘홍콩 감독들은 어쩜 이렇게 시장을 잘 알까.’라고 느꼈다. 그때 상당수 감독들은 고용인이었고 상업적 수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수익은 그들과 전혀 관계가 없었다. 지금 대륙은 완전히 홍콩과 똑같아졌다. 게다가 민영과 개인제작자 까지 등장할 정도로 크게 변화했다.


당신이 “홍콩인의 현재 문화적 심리는 나약한 심리다”라 말한 건 어떤 의미인가?

느낌일 뿐이다. 이전에 홍콩인이 오만한 편이었다면 지금은 대다수가 홍콩인들이 관대해졌다고 느낀다.(웃음) 이건 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합작 영화는 80년대부터 시작했다. 이전에 홍콩인이 대륙에서 찍은 <심향기병(深港旗兵: 역자주: 구글을 돌려봐도 이 제목이 안뜨는 걸 보면 성향기병의 오타가 아닐까 싶습니다)>에서 <과부신랑(过埠新娘)>, <표저(表姐)>같은 작품에서 대륙인은 촌뜨기였다. 요즘 영화에서 돈 있는 캐릭터는 누구인가? 홍콩인이 아니라 전부 대륙인이다. 이런 캐릭터에서 이미 변화가 시작했다는 걸 당신은 영화에서 느끼지 못했나? 영화와 사회가 바뀐거다.


예전의 홍콩 감독은 현지에서 성장했다. 때문에 시민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었고 덕분에 “홍콩적인 느낌”의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현재 이런 환경의 변화와 사람들의 심리 상태 변화한 상황에서 당신이 관찰하기에 홍콩 감독들은 대륙과의 합작에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나?

긍정적으로 모색 중이다. 사실 시장은 여전히 발전 중이다. 대륙도 계속 발전하고 있고 변화는 하루하루 다르다. 각본 심의에서 영화심의까지 우리에게는 몇 년 간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나는 심의 쪽은 오히려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나 개인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대륙 관객의 입맛을 맞출 방법이 우리에게 없다는 거다. 대륙 감독에게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교과서를 받아서 대륙의 입맛을 연구해봤다.

그러고서 발견한 건, 어떤 것들은 평생을 배워도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거다. 가령 펑샤오강의 시나리오를 나한테 주고 찍으라고 하면 난 못한다. 왜냐면 내가 그런 환경에 있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망불료>, <신불료정> 같은 멜로 영화는 문제가 없다. 세계 어디나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것을 다루기는 어렵다. 이런 문화적 차이는 무척 크다.


이번 양안삼지(两岸三地: 대륙, 홍콩, 대만) 감독 회의에 허우샤오시엔은 10년이나 젊은 감독들을 데리고 홍콩에 왔다. 당신은 대만 영화의 흥성을 어떻게 보나?

나는 그들의 부활이 대륙 시장 덕이라고 본다. 현재 대륙은 대만과의 합작물을 정식으로 개방하고 있다. 대만 영화를 시장으로 인식하는 거다.

대만의 신전영(新电影: 새영화)은 몇 편 봤다. 대만에 진정한 의미의 프로듀서 제도가 없기 때문에 미술이나 창작 면에서 활력이 넘친다고 느꼈다. 그러나 영화 스토리의 완정성에 있어서는 여전히 문제가 있다. 어떤 때는 앞부분은 이렇게 잘 찍었으면서 결말 부분에서 어떻게 이렇게 찍었나 싶었다. 

대만 영화의 저조기가 그렇게 길었던 건 젊은이들이 성장하기를 기다리고 있어서다. 예전에 방치되었던 관객을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5, 6년 기다리면 새로운 관객이 나타날거다.


신인 감독 육성은 고려해보지 않았나?

늙으면 도태되게 되있다. 한국 영화를 보면 오랫동안 침체되있다가 순식간에 절정기가 됐다. 지금은 또 빠르게 침체되고 있다. 한국과 지금의 대만, 지금의 대륙은 닮은 구석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대만 영화는 지금 어떤 정도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젊은 감독들이 등장하는 걸 보면 눈이 부실 정도다.


이번에 장홍(长虹), 학자(学者) 두 영화사에서 투자한 영화 두 편 중 하나는 주연평(쿵푸 덩크, 신유성호접검, 대소비도 등의 감독)이 메가폰을, 다른 작품은 왕정이 찍고 있다. 모두 당시의 전통적인 제작 방식으로 말이다.

홍콩 영화가 망하는데 그들이 엄청 큰 노력을 했지. 대륙 친구들한테 니들은 영화 만들 때 시장이 그렇게 좋으니 조급하지 않아서 좋겠다고 말한다.

내 시나리오도 이런 문제에 부딪친다. ‘응? 이런 스타가 좋겠네, 누구누구누구를 써야겠다. 벌써 스케쥴이 차 있는 거다. 탁자를 찍는데 난 그만두고 싶다고 말해도, 그들의 투자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 시나리오를 일본에 가져가서 각천(角川; Kadokawa)을 찾아가고 한국도 찾아가면, 일본영화나 한국영화를 만들어야 하지 화어영화를 만들수는 없는 거다. (뭔 소린지...ㅠ.ㅠ)

설사 정부 지원을 얻어도 배급사에서 당신을 지지해줘야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거다.


진가신이 찍은 <명장>, 진가상의 <화피>, 서극의 <여인불괴>를 어떻게 보나?

모두 시장 때문이다. 그렇지만 서극은 문화적인 걸 시도했는데 서극이 북경을 무진장 좋아하거든. 그는 홍콩을 견딜 수가 없는 거다, 나보다 화가 더 많이 났거든. 서극은 진지하게 자신과 영화 이야기를 할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그는 예술을 말하길 좋아하는데 모두 서극이랑 그런 이야기는 안하거든. 시장 이야기만 하지. 그래도 북경에는 그의 친구가 무척 많다.


<여인불괴>에서 서극은 북경 문화 정신의 기초인 언더그라운드 락밴드를 담아냈다.

난 서극한테 정말 감탄한다. 진가신 같은 나 같은 사람들은 시장을 많이 고려한다. 관객이 좋아할까, 투자자가 좋아할까. 우리는 돈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다--내가 진가신을 대표한다는 말은 아니고(웃음). 어쨌든 나와 비슷하다. 우리는 늘 돈 이야기를 한다. 서극은 그런데에 전혀 관심이 없다. 당신이 서극과 이야기해보면 그가 돈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걸 알거다. 서극의 집에 가서 술을 먹어보면 절대 이 영화가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영화 이야기 말고도 서극은 특수효과 이야기를 하는데 어떨 때는 과학가나 발명가 같다.

전에 영화 쪽 회의가 있으면 우리는 늘 시장과 상업적인 것만 이야기했다. 그래서 내가 다른 재밌는 걸 연구해보자고 했다. 가령 홍콩과 대륙의 문화는 왜 그렇게 다른가? 또 영화 시나리오에서 홍콩인의 시나리오는 왜 대륙인들의 비웃음을 사는가 등등. 왜 <해각칠호>는 이해가 안 가지? 난 대만에서 초등학교 3년을 다녔는데 항상 대만에 가면 왜 현재 대만에서 일반 시민과 경찰 사이의 관계가 그런지 모르겠거든. 이게 문화적 차이인데, 시장 말고 이런 걸 이야기해보자고 했지.


당신은 영화계에서 서극이 가장 순수하다고 보나?

영화를 오래 찍었고 늘 느끼는 건데 잠깐 이야기하자면, 서극과 허안화 두 사람만이 영화를 목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에 다른 건 없다.

나와 그들의 가장 큰 차이가 이거다. 난 삶에 다른 게 많다. 50이 되니까 영화 때문에 다른 걸 포기하고 싶지 않아졌다. 왜냐면 영화도 나한테 하나의 일일 뿐이니까. 여행이 내가 제일 바라는 거다.


진가신은 북경에 사무실을 차렸고 다른 많은 감독들도 준비 중이다. 당신도 생각 있나? 가령 어제 맥조휘랑 이야기했는데 생각이 있다더라.

사실 어렵겠지, 그 과정은 확실히 고통스러우니까. 난 아직도 진짜 뛰어난 대륙 느와르를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몽콕 흑야>처럼 찍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고.


<삼소야의 검> 같은 작품에 시대적 배경이 들어가나? (초원이 감독, 이동승이 주연한 작품)

고룡의 작품은 진짜 시대적이지. 고룡은 그 작품을 타이베이에서 찍었는데 당시 타이베이는 흑사회 때문에 강호같았거든. 그래서 캐릭터가 아주 현대적이다.  <삼소야의 검> 같은 작품에 압력은 없는 게 원작이 있으니까. 자기가 쓰면 압력은 비교적 크다.


<몽콕흑야>에서 장백지는 원래 대륙 여자였는데 당신이 말레이시사 사람으로 바꿨다.

당시에는 심의를 위한 기교였다. 어떤 감독이 나한테 따졌다. 당신 알아? 우리가 지금 찍는 영화는 이상 속의 사회라고.

나도 소통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도 제도적으로 문제가 있는데 당신은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누구도 정확히 파악할 수 없고 누구도 익숙해질 수 없다. <신주쿠 사건> 같은 작품은 관계가 나쁜 시기에는 찍을 수 없고 관계가 아주 좋을 때도 찍을 수 없다. 그런 작품은 정확히 파악하는 사람은 없다. (-_-;; )

전영국 관리도 이해를 못한다. 전영국은 홍콩영화에 줄곧 분명한 태도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