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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번역] 엽위신 인터뷰 - 지금은 돈을 벌 영화를 만든다

 * 4월 16일 <엽문>이 국내 개봉합니다.  이 글은  2008년 12월 18일 <외탄화보(外灘畵報)>에 올라온 <엽문>의 감독 엽위신의 인터뷰 부분을 번역한 글입니다. (인터뷰 당시 홍콩과 중국 내에서 엽문은 아직 개봉 전이었습니다) 원문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출처를 클릭해주세요. 단순 감상을 위한 목적으로 거칠게 번역된 글이며 모든 저작권은 해당 잡지사에 있습니다. 또한 문제가 발생할 시 언제든지 삭제됩니다.   출처 : 이 곳

2009/01/26 - [자료] - [번역] 영춘권(咏春拳)과 홍콩 영화 - 1
2009/02/01 - [자료] - [번역] 영춘권(咏春拳)과 홍콩 영화 - 2



엽위신과 영춘권의 일대 종사 엽문은 성이 같다. 엽위신의 아버지 역시 광동성 불산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사람이다. 족보를 조사해본 적이 없어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엽문과 혈연관계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엽위신은 이렇게 말한다. “결국 한 집안일 것이다.” 왕가위보다 빠르게 엽위신이 감독한 <엽문>은 완성되 2009년 새해 첸카이거의 <매란방>과 동시에 개봉한다.


엽위신은 홍콩의 소장파 감독이 되기 위해 오랫동안 스타 한 명과 ‘살인과 폭력’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살파랑>을 시작으로 엽위신은 견자단과 함께 4편의 액션물을 함께 했다. <화피>의 기획 단계에서 엽위신이 감독하길 희망했지만 일이 많다는 이유로 그는 거절했다. 현재 진가상의 <화피>는 흥행에서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엽위신은 전혀 후회하지 않으며 오히려 조금 불만족스럽다고 한다. “다른 일을 먼저 수락한 마당에 방법이 없지 않나.”


1985년 영화계에 입문한 이래 엽위신은 10년간 계속 남의 밑에서 조감독 생활을 한다. 1995년에야 비로소 감독이 될 기회를 잡는다. 그는 <조화창(走火槍)>이란 영화에 게스트로 출연, 황진진과 부부를 연기한 적이 있다. 항상 여자 친구를 두들겨 패는 폭력적인 경향을 가진, 또 어쩔 땐 온유한 남자 연기는 매우 훌륭했다. 심지어 영화팬들은 오진우의 자질이 보인다고 까지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배우가 될 생각이 없었다. “난 성격이 부드러워 배우에 맞지 않다. 또 배우는 너무 피동적이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배경의 한 면일 뿐이다. 사실 스탭들이 더 힘들고 제약이 많다.”


<엽문>을 찍는 동안 엽위신에게는 사심이 있었다. 그는 3개월간 텍스트 자료를 분석하며 엽문 사부에게 유전된 모든 자료를 흩어봤다. 결국 엽위신은 자신과 엽문의 내심이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엽문은 매우 부드러운 사람이다. 나 역시 그렇다.”고 평한다.


엽위신이 보기에 엽문은 전혀 나서길 좋아한 사람이 아니다. 당시 불산에서 명성이 드높아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음에도 엽문은 다른 고수들과 교류하지 않았고 무도관을 열기도 싫어했다. 왜냐하면 엽문이 보기에 고수들이 한데 모이면 최고를 다툴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누가 2위를 하고 싶겠는가, 싸움이 커질 것이다, 엽문은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둘은 모두 천칭자리다. 천칭자리는 남의 별자리에 양보한다. 그래서 난 견자단에게 내가 이해하는 엽문의 사건과 그의 태도를 전부 말했다. 만약 그런 사건이 나에게 일어난다고 해도 나 역시 같은 선택을 했을 거다. 엽문은 체면을 무척 중시했고 남을 건드리지 않았기에 남도 그를 건드릴 수 없었다.” 견자단은 엽문 연기에 비상하게 적응했다. 두 사람의 외형과 윤곽은 몹시 비슷하다. 엽위신은 “견자단과 엽문은 모두 쿵푸를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매우 힘이 넘치면서도 동시에 가족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한다.


엽문의 명성은 광범위하게 전해져왔고 특히 이소룡 덕이 크다. 왜냐면 엽문은 이소룡이 유일하게 인정한 쿵푸 사부이기 때문이다. 영화 <엽문>의 제작에서도 이 점을 고려해, 이소룡이 나와 사부와 싸우는 장면을 넣을까 했었다. 혹자는 대담하게 역사적 진실은 상관 말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한데 섞으면 큰 흥행이 될 거라고 말했다. 이 제안들은 최종적으로 엽위신에 의해 거절됐다. “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관객을 기만하다는 거다. 난 엽문을 찍는거지 이소룡을 찍는 게 아니니까.” 영화 <엽문>은 엽문의 일생을 포괄하지고 있지 않다. 주 내용은 일본의 중국 침략 전 1, 2년부터 엽문이 불산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동안의 이야기이다. 그 시기는 이소룡이 아직 엽문을 몰랐을 때다. “만약 정말 이소룡을 찍을 거면 완전히 다음 이야기를 찍어 엽문과 이소룡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엽문이 어떻게 이소룡에게 쿵푸를 가르쳤고 이소룡의 사부가 되었고 무슨 영향을 끼쳤는지를.” 영화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엽위신은 벌써 속편을 염두에 둔 것처럼 보인다.


<살파랑>, <용호문>, <도화선>에서 지금의 <엽문>까지, 엽위신은 상업적인 액션물을 찍어왔다. 그는 여러 차례 기자에게 자신은 정말 문예물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어찌됐든 대다수 홍콩 영화팬이 인정하는 엽위신의 최고 작품은 <폭렬형경>과 <주려엽과 양산백>이다.  엽위신은 기자에게 최근 2달 동안 깨달은 바 - 반드시 흥행작을 먼저 만들어야겠다 -를 말했다. “지금 내가 찍는 상업영화에는 나 자신의 풍경이 전혀 없다. 그러나 내가 사장을 찾아가 문예물을 찍고 싶다고 말할 수도 없다. 현재의 상황은 내 영화가 먼저 잘돼야 한다는 거다. 돈을 벌고 나면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찍을 기회가 생길 거다.”


엽위신은 견자단과 4번이나 일하면서 단짝이 됐지만 사실 암전(暗戰)의 대상이기도 하다. “사실 문예물이나 호러물이나 무협물 모두 좋아한다. 액션씬이 없으면 문예물인가. 문제는 내가 나 자신의 작품이 견자단의 영화로 변화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의 풍격을 담기기를 바란다는 거다.”


외탄 : <엽문>은 당신의 첫 번째 실제 인물을 다룬 영화다. 크랭크 인 전에 준비를 많이 했나?

엽위신 : 엽문은 남방 사람이기에 우리는 어느 정도 그를 이해하고 있다. 또 엽문의 큰아들에게 자문을 받았다. 그는 우리에게 역사적 자료와 함께 실제 일화를 이야기해줬다. 그러나 어떤 사건은 그 아들 역시 몰랐다. 그는 우리를 불산으로 데리고 가 엽문이 당시 살던 집을 보여주기도 했다.


외탄 : 그런 점이 당신에게 허구가 아닌 진실만을 찍어야 한다는 제약이 되지는 않았나?

엽위신 : 개인적으로 허구를 많이 넣고 싶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는 게 제일 좋다. 엽문의 이야기는 무척 현대적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다. 남방에서 그는 여전히 수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있는데, 나는 그의 제자들이 내 영화를 보고 “이건 우리 사부님을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잖아!”라고 말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 역시 황비홍처럼 진실인지 거짓인지 상관없이 보기만 좋은 영화를 찍고 싶지 않았다. <엽문>은 신화나 전기성(傳奇性)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사실적이어야 했다. 엽문은 나와 당신같은 보통 사람이다. 그저 쿵푸 실력이 뛰어났을 뿐이다. 심지어 그는 제자를 거두기도 싫어했고 남에게 쿵푸 가르치는 것도 싫어했다. 1930년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자 각자 이 재난에 자기 자신의 방법으로 대응해야 했다. 엽문 같은 사람은 이 대환란의 시기가 임박하고서야 비로소 특수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 대시대란 배경 아래 영웅이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외탄 : 영화의 풍격이 <황비홍>처럼 낭만적이지 않다면 비교적 사실적이라는 의미인가?

엽위신 : 풍격은 중요치 않다. 가장 중요한 건 어떤 대시대 속 인물의 운명을 내가 그려내고 싶었다는 거다. 그는 영웅이 아니다. 그러나 그 대시대를 겪었다.


외탄 : 당신이 견자단을 선택했나, 아니면 견자단이 당신을 선택했나?

엽위신 : 우리는 이 작품 전에 3번을 함께 일했다. 전에 견자단에게 진짜 쿵푸물을 찍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견자단은 그 전에 이미 수많은 액션물을 찍었지만 진정한 쿵푸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그에게 능력이 있다고 느꼈고 그는 이미 그런 기초가 준비되어 있었다. 나중에 사장이 친구를 통해 <엽문>의 판권을 샀다. 엽문은 이소룡의 사부인데다 견자단 또한 이소룡을 무진장 좋아한다. 견자단이 나타났을 때 외국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이소룡의 계승자로 보았다. 사실 엽문의 명성은 이소룡 때문이다, 이소룡이 유일하게 인정한 사부니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놀란 건 견자단의 외모가 엽문 본인과 무척 비슷하다는 거다.


외탄 : 왕가위 역시 <엽문>을 만들 계획이다. 당신에게 압박이 되진 않았나?

엽위신 : 적어도 우리가 쿵푸나 화면 상에서 이해가 있고 견자단이 더 발휘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가 다루는 이 인물이 다른 곳에 있어도 우리는 이 일대종사를 일제시대란 대 환경과 마주한 무도인으로 그렸다는 거다. 사실 나와 왕가위는 비교도 불가능하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왕가위는 자신의 방법으로 영화를 만들거다.


외탄 : 당신은 왕가위를 문예물 감독이라고 본다. 왕가위는 인물의 인성을 발굴해 비교적 심각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다른 각도에서 할 수 있다. 이건 단점을 피하고 장점을 높이는 건가?

엽위신 : 사실 난 왕가위 영화를 당신들처럼 아주 좋아한다. 그가 <엽문>을 찍는다고 들었을 때 난 엽문이 <화양연화>처럼 변하길 기대했다. 엽문은 흡연을 좋아하는데 양가위가 담배 피우는 모습 또한 전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 음악, 미술, 영상 모두 가장 아름답다……관객들의 상상처럼, 나도 상상했다. 반대로 견자단의 장기는 무술이다. 그가 엽문을 연기한다면 반드시 싸우는 신이 있어야 하고 관객은 그런 점을 기대한다.


외탄 : 견자단과 당신이 작업할 때 예전에는 문희(文戲)와 무희(武戲)의 비율이 1:1이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번에도 그런 방식을 고수했다.

엽위신 : 아니. 이번 작업은 나와 견자단이 제일 만족한 작업이다. 나 자신도 만족했고 그도 만족했다. 우리는 모든 액션신을 인물에 근거해 시작했다. 전부 엽문이 거친 단계를 기초로 구상했고 액션을 위한 액션은 없었다. 엽문이 마른 편이라 견자단도 감량했다.


외탄 : 이전 견자단과의 작품은 모두 견자단 자신이 무술감독을 맡았다. 이번에 당신은 홍금보에게 맡겼다. 왜인가?

엽위신 : 이번에 견자단은 실제인물을 연기해야 했다. 이전에 연기한 배역과는 다르다. 그는 30년대 인물을 모방해야 했고 공부가 필요했다. 이전에는 그 자신이 연기하고 싸우고 하느라 너무 힘들었다. 연기하면서 한편으로 액션신을 생각해야 하니까 때로는 끔찍하게 바빴다. 그래서 예전 사장은 항상 우리가 일을 초과하고 시간을 초과한다며 사실 문제는 전부 여기서 생긴 거라고 했다. 왜 누굴 초빙하지 않나? 홍금보는 <엽문>의 무술 감독으로 무척 적합했다. 그는 <영춘권>을 찍었고 자신 역시 그 방면의 쿵푸를 연마했다. 사실 이 영화의 사람들은 우리가 찍었던 <살파랑>의 조합과 무척 비슷하다. 다른 점은 홍금보가 이번에는 주연이 아니고 홍금보와 견자단이 싸울 기회가 없었다는 거지.


외탄 : 당신에게 임박한 제일 큰 곤란은?

엽위신 : 늘 돈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거. 난 언제나 더 스케일이 큰 장면을 찍고 싶거든. 가령 우리 영화 속 30년대 장면에서 난 당시 시대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문무(文武) 양방면의 융합한다면 제일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 전부 실현되지는 못했다. 이번 작업은 총체적인 각 방면의 융합 면에서 보면 이상적인 상황과 실제 효과와의 차이가 최소인 첫 작품이다.


외탄 : 웅대림이 맡은 배역은 솔직히 말해 병풍 같다. 그래서 당신 또한 미인을 캐스팅한건가?

엽위신 : 솔직히 말하면 그렇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엽문이고 당연히 자신의 가정이 있고 애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남성 영화에서 그를 에워싼 여인은 확실히 꽃병 같은 존재이고 웅대림이 연기력을 발휘할 여지가 크지 않았다. 그녀의 연기는 괜찮았다. 나는 그녀에게 부인이란 역할에 압박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라고 했다. 엽준(엽문의 아들)이 상해에서 열린 우리의 보고회에 참가해 촬영이 끝난 웅대림을 봤다. 엽준은 나에게 “웅대림을 처음 보는데 모친과 정말 닮았네요.”라 했다. 그의 모친 역시 키가 크다.


외탄 : 견자단과의 합작이 계속 이어질까? 새로운 구상을 어디서 찾을 생각인가?

엽위신 : 이런 합작은 계속 이어지겠지. 그러나 조급하게 같이 할 필요는 없고 몇 년에 한 번이면 된다. 난 우리가 다른 영화를 몇 편 찍은 후에 다시 합작했으면 한다.


외탄 : 현재 당신이 계속 찍고 싶은 건 여전히 문예물인가?

엽위신 : 전엔 진짜 모순이었는데, 지금은 돈이 벌리는 영화를 찍는 쪽으로 생각이 풀렸다. 내 생각은 요 2달 사이에 변했다. 전에야 내 자신의 스릴러를 찍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작품은) 대륙에서 상영할 수 없다. 또 내가 찍고 싶은 문예물은 분명 돈을 못벌거다. 그래서 지금은 돈이 되는 영화를 찍을 생각이다.

전에 두기봉이 <러브 온 다이어트>를 찍으며 “사실 이런 돈이 벌리는 영화를 찍는 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다”라고 한말이야 지금에서야 이해가 된다. 지금은 분명하게 깨달았다. 내가 찍고 싶은 영화는 분명 돈을 못벌거다. 그러나 난 우선 돈이 될 영화를 찍을 수 밖에. 그러고 나서야 조금씩 자신의 목표에 가까워질 거다. 난 사실 <폭렬형경>같은 영화를 무진장 좋아하는데, 형사물을 찍기 겁났지만 그 영화에는 내 자신의 강렬한 풍격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