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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완령옥


완령옥 (阮玲玉; Center Stage; 1991)

감독 : 관금붕
각본 : 구대안평
출연 : 장만옥, 양가휘, 진한, 유가령, 이자웅

[완령옥]은 상해에서 활동했던 무성영화 시대의 전설적인 여배우 완령옥의 삶을 재현하는 동시에, 현재의 배우들이 완령옥의 삶에 대해서 토론하고 이해하며 그녀의 전기 영화를 찍는 과정을 담아낸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카탈로그에는 [완령옥]을 영화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하지만, [완령옥]은 영화보다는 배우라는 존재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 작품에 더 가깝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유가령과 장만옥 등에게 완령옥이 오늘날에도 기억되는 것처럼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라는가를 질문하는데(유가령은 당연히 그러길 바란다고 웃으면서 대답한다) 이것은 배우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인 것 같고, 완령옥이 촬영을 끝내고도 촬영 당시의 감정에 사로잡혀 이불보를 뒤집어쓰고 오랫동안 우는 장면에서 나타나는 배우라는 존재의 숙명과 고통, 완령옥을 죽음으로 몰고 간 집요한 옐로우 저널리즘의 공격 등은 오늘날의 배우들도 겪는 일인 바.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의 고통까지 짊어지고 가는 것이다. 영화는 완령옥(장만옥)이 [신여성] 촬영 당시 병원 침대에서 죽어가는 장면을 찍은 뒤에도 오랫동안 흐느끼는 모습을 잡아낸다.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서 그것은 영화 속 영화임이 드러나고, 그 순간 이불보를 뒤집어쓰고 흐느끼는 것은 완령옥이 아닌 장만옥이다. 그러니 영화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배우에 대한 영화로 보일 수밖에.

다큐멘터리와 결합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영화를 주로 이끌어가는 것은 장만옥이 연기하는 완령옥의 삶의 재현인데, 영화에서 재현하는 완령옥의 삶의 축은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과 그녀의 애정 관계다. 완령옥은 유복한 집안 출신인 장달민과 연인 사이였으나 나약한 정신을 가진 장달민은 경제적으로 몰락해가고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완령옥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을 피해 잠시 홍콩으로 피신했던 완령옥은 부유한 사업가이자 자상한 당계산에게 이끌리고 그와 동거를 하게 된다. 그러나 당계산에게는 아내와 정부가 있었고(그 정부 역시 유명 배우 출신이었다), 당계산은 완령옥과 동거하면서도 아내와 헤어지지 못했다. 완령옥은 당계산의 사람됨을 나중에야 알았으나(물론 당계산에게 아내가 있다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다) 그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다고 영화는 서술하고 있다.
당계산과 완령옥의 관계는, [연지구]를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다. 당계산은 나중에 대만에서 생활했고, 몰락하여 거리에서 담배를 팔다가 늙어 죽었다고 영화는 밝히고 있다. 완령옥이 음독하기 전의 나레이션을 보면, 그녀는 만약 영혼이 있다면 당신을 보살펴 주겠노라고 말한다. 그 얘기를 들으니 [연지구]에서 이승에 남긴 연인을 찾아 온 기녀의 유령, 그리고 결국 몰락하여 초라해진, 그녀의 늙은 연인의 뒷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다. 장달민은 매달 100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완령옥과 헤어졌는데 결국 그의 변심이 완령옥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장달민의 변심에는 국민당의 공작이 개입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정확한 진상은 알 수 없고... 장달민은 완령옥 전기 영화에 자기 자신의 역할로 출연하기도 하는 등, 죽은 후에도 그녀와의 추억을 뜯어먹고 살았으니 영화에 출연한 누군가의 표현대로 구제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폐병으로 일찍 죽었다는 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알았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그녀와 미묘한 관계에 놓이는 사람은 양가휘가 연기한 채초생 감독이다. 영화를 보면 적어도 채초생은 완령옥을 좋아했던 것처럼 보인다. 채초생은 장달민 같은 속물도 아니었고 당계산 같이 겉으로만 자상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 부족했던 것은 용기. 스캔들에 휘말린 완령옥이 자기를 데리고 홍콩으로 갈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채초생은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한다. 채초생은 완령옥을 구할 수 없었다.

완령옥은 16세에 데뷔하여 연화 영화사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저 예쁘게만 보이면 그만인 '꽃병' 역할에 머물렀다고 영화는 전한다. 장만옥이 영화에서 완령옥에 대해 얘기하면서, 옷깃이 목을 안 보이게 하는 옷을 입고도 섹시함이 뿜어져나오더라고 감탄을 하는 것이다. 그녀가 채초생 앞에서 마를렌느 디트리히 흉내를 내자 채초생은 마를렌느 디트리히는 촌부 역할은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당신은 할 수 있다. [삼개마등여성]이라는 영화에 출연할 때, 이 소박한 배역은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감독 앞에서 그녀는 평범한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배역에 잘 어울린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연기에 임했고, 그만큼 내면에는 고통이 쌓였던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그녀와 어린 소옥의 관계도 이해하기 쉽지 않았는데, 생각해 보면 그렇게 정리가 된다. 아이를 낳은 적이 없던 그녀는 소옥을 입양함으로써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게 많은 영화에서 어머니 역을 맡았던 그녀의 연기의 원동력이 된 게 아니었을까. 물론 그러한 행동이 연기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말하기가 쉽지 않지만, 적어도 그녀의 열정과 자세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연화 영화사는 애국적인 기운이 넘치던 곳이었는데,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과 연화 영화사 인물들의 관계 등은 처음에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중에 완령옥이 죽기 전날밤 벌어진 파티에서 어떤 감독에게 한 얘기를 들어보면(손유 감독이었던 것 같다), 이 영화사가 그녀에게 정치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다(영화는 1991년 현재 폐허가 된 연화 영화사 부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연화 영화사에 대한 정치적인 공격이 그녀를 표적으로 삼아 이루어지게 된다. 발단은 채초생이 찍은 [신여성]의 옐로우 저널리즘 비판을 기자들이 자신들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인 것이고, 영화는 당시 기자협회 내부의 국민당 당원들이 영화에 대한 보이콧 분위기를 일으켰다고 말한다. 채초생은 기자협회의 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기자들에 대해 비판한 장면들을 삭제했는데, 이 시점에서 완령옥의 스캔들이 기사화된다. 사업을 한다면서 돈을 당겨 받았고 변호사 앞에서 합의문에 서명까지 한 장달민이 갑자기 완령옥과 당계산을 고소한 것은 누군가의 조종에 의한 것 아니었을까 추측된다는 것은 앞서 얘기한 바와 같다.

처음에는 약간 따라가기 힘들었던 영화를 갑자기 넋놓고 보게 했던 것은 완령옥과 여리리(유가령)가 [소완의]를 촬영하는 장면이었다. 여리리가 자신의 어머니 역을 맡은 완령옥 앞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장면을 찍을 때, 감독은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는데 그게 뭔지 꼭 집어서 얘기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때 완령옥이 여리리에게 그녀가 연기하는 인물의 캐릭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리고 나서야 그녀의 연기는 감독을 만족하게 한다. 이때 영화는 실제 [소완의]의 프린트를 보여준다. 그 장면에서 여리리의 눈물이 완령옥의 손가락에 맺히는데, 그것이 꼭 진주처럼 보인다. 관금붕이 찍은 [완령옥] 그 자체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는 완령옥 실제 출연작들의 프린트도 아름답기 그지없는데, 특히 앞서 상영한 [신녀] 때문에 [완령옥]을 더 특별하게 볼 수 있었다. [완령옥]에는 [신녀]에서 그녀를 착취하는 두목 역을 맡았던 장지직과 완령옥이 함께 연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경찰에 쫓겨서 장지직의 방에 들어간 완령옥이 그의 손아귀에 걸려드는 대목이었다. 그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은 완령옥은 책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우는데, 그것은 소극적인 반항의 몸짓이었다. 영화에서는 그 장면을 장만옥이 그대로 연기하는 것과 더불어 [신녀]에서 그 장면의 프린트를 보여준다. [신녀] 덕분에 [완령옥]을 더 특별하게 보았고, [완령옥] 덕분에 [신녀]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오영강 감독과 세상을 떠난 완령옥)

완령옥은 독백을 통해 자신은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세상의 소문은 두렵다고 말하고 약을 먹는데, 완령옥의 장례식 장면 역시 앞서 나왔던 [신여성]의 클라이막스 촬영 장면처럼 그것이 영화 속 영화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장면은 몹시 특별한 느낌을 준다. 장만옥은 죽은 완령옥이 되어 누워서, 컷 소리가 날 때까지 숨도 쉬지 않고 있다. 그 장면의 촬영에 참가한 배우들도 이것이 마치 실제 상황인 것처럼 엄숙하고 진지하게 연기하고 있다. 그러한 모습은, 이 장면이 실제 상황이 아니라 연기라는 소격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완령옥의 운명을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진짜 운명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촬영을 통해 그녀를 추모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장만옥은 비록 완령옥처럼 불행하게 세상을 떠나진 않았지만 이 영화에서 완령옥과 장만옥은 서로 겹쳐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18년전, 한창 아름다운 20대 중후반의 장만옥과 인생의 절정기에서 세상을 떠난 완령옥 두 사람의 아름다움이 겹쳐지고, 배우라는 존재의 운명, 연기에 대한 열정이 겹쳐진다.

1. 시국이 시국인지라,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영화를 본다는 게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2. 난 왜 지금까지 관금붕을 여자라고 생각했을까?

3. 생각해 보니 썬더버드 님께서 전에 쓰신 리뷰가 있었다. 다시 읽어보니 역시 그쪽이 더 좋은 것 같음. 그렇게 글을 쓸 수 있으려면 노력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