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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적벽대전 2 : 최후의 결전 (赤壁 2 : 決戰天下; Red Cliff Part II, 2009)



적벽대전 2 : 최후의 결전 (赤壁 2 : 決戰天下; Red Cliff Part II, 2009)

감독 : 오우삼
각본 : 오우삼, 진한
출연 : 양조위, 금성무, 장풍의, 장첸, 조미, 임지령, 호군, 나카무라 시도우

(스포일러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적벽대전] 1부는 안 봤다. 하지만 익숙한 내용인데다 2부를 시작할 때 1부의 중요한 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1부를 안 봤어도 2부를 이해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웬만한 사람들은 적벽의 싸움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조조는 손권과 유비 연합군에게 패함으로써 천하를 완전히 거머쥘 기회를 놓친다. 손권은 강동을 지키며 유비는 이 싸움의 결과로 형주를 차지하고 훗날 서촉으로 진출하게 되어 중국은 세 부분으로 나뉘게 된다. 적벽의 싸움은 천하가 셋으로 나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영화 [적벽대전]의 큰 줄거리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과 달라진 게 없지만, 그 사이에 담겨 있는 이야기는 정말 많이 바뀌었다.
먼저 손상향(조미)과 손숙재(동대위) 이야기. 영화 [적벽대전]에는 훗날 유비의 아내가 되는 손상향이 조조 진영에 첩자로 잠입했다가 손숙재라는 어리바리한 청년을 만나 친구가 된다는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이 이야기는 완전한 창작이며 영화의 다른 설정이나 여타의 이야기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똑같이 창작된 이야기 하나는 다르다. 주유(양조위)의 아내 소교(임지령)가 조조(장풍의)의 진영을 찾아가서 조조와 함께 차를 마시게 된다는 설정, 그로 인해 조조군이 동오의 군대를 공격할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는 설정은 영화에 정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설정 때문에 주유가 황개(장산)를 이용하여 고육계를 펼쳐 조조를 속이는 원래 이야기는 영화에서 황개의 건의 한마디, 그에 이은 주유의 간단한 거절 한마디로만 끝나게 되었다. 또한 소교가 조조의 진영에 잡혀 있음으로 해서 필연적으로 주유가 조조 진영으로 쳐들어가 소교를 구출하는 장면이 클라이막스를 장식하게 되었고, 관우(파삼찰포)가 화용도에서 조조를 놓아주는 이야기도 황개의 이야기와 아울러 없어졌다. 황개의 연환계와 관우의 화용도 이야기는 연의의 적벽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이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제갈량이 바람을 동남풍으로 바꾸는 대목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연의에서 제갈량은 단을 쌓고 며칠 동안 바람을 빈 끝에 서북풍을 동남풍으로 바꾸지만 영화에서는 바람이 바뀐다는 사실을 예측하는 것으로 달라졌다. 영화에서 조조는 주유의 계략으로 인해 채모와 장윤을 죽인 다음에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분노한 나머지 공격을 서두른다. 불과 이틀 후에 동오의 군대를 공격하기로 한 것이다. 바람이 서남풍이었기 때문에 동오의 군대는 병력의 열세를 만회할 수 있는 화공책을 쓸 수 없었는데, 제갈량은 기상을 관측한 후 이틀 후 밤에 바람이 바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동오의 수군은 서둘러서 나온 조조의 수군을 바람이 바뀐 사이에 격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치대로 따지면 조조의 군대가 그렇게 빨리 나올 리가 없었다. 조조의 수군은 덜 훈련된 데다(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배들을 서로 연결해 놓았다) 마땅한 지휘관도 없는(영화에서는 조조군의 수군 지휘관이었던 채모와 장윤의 후임이 누구인지 나오지 않는다. 물론 연의에서처럼 누군가를 임명했겠지만 새로 임명된 수군 책임자가 능숙하게 수군을 이끌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상태였기 때문이다. 병력도 훨씬 많지 않았나? [적벽대전]의 조조는 연의의 조조와 비교해도 지나치게 용렬하다. 성품도 그렇거니와 단지 속았다는 사실에 분노해서 싸움을 서두른 나머지 유리한 전쟁을 그르쳤다는 것은 탁월한 전략가라는 조조의 이미지나 능력에도 걸맞지 않는다. 일찍이 장수에게 쫓길 때 아들이 주는 말을 얼른 타고(즉 아들의 죽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목숨을 건진 조조였는데, [적벽대전]에서의 조조를 보면 싸움에 패한 뒤 후퇴할 타이밍조차 몇 번이나 놓치고 있다. 원작대로라면 조조가 기다리는 사이 제갈량은 단을 쌓고 하늘에 기도를 올려 바람을 동남풍으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황개가 거짓으로 조조에게 항복을 해서 화공을 성공시키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짐작하건대 영화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납득이 안 갈 정도로 싸움을 서두른 이유, 그로 인해 며칠 안에 전쟁이 끝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소교가 조조의 진영으로 간다는 설정 때문이 아닐까? 제작진은 소교가 색을 좋아하는 조조의 진영에 오래 있으면 반드시 정절을 잃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영화의 주제도 망치게 된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 제작진은 주유와 제갈량이 라이벌로서 호각지세를 이루는(연의에서처럼 주유가 자신이 제갈량에 미치지 못함을 한스러워하고 그에게 당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벽대전 영화를 구상했고 그 과정에서 주유와 소교가 주인공으로 떠오르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속에서 부각시키고자 하는 내적인 주제는 ‘가족’이었던 것 같다. 


  영화를 보면 조조와 주유는 자신들이 한 나라의 우두머리, 혹은 중임을 맡은 인물임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들은 내면적으로 자신들을 가부장으로 자리매김한다. 조조가 중병에 걸린 병사들에게 가서 자기 막내아들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는 특히 그런 점이 잘 드러난다. 이야기인즉슨, 자기 열세 살짜리 어린 아들은 몸이 약해서 병을 달고 살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걱정을 끼치기 싫은 나머지 아프지 않은 척 한다는 것이다. 조조가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서 너희들과 함께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말로 이야기를 끝맺자 병사들은 일제히 승리를 연호한다. 조조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는데, 한 편으로는 자기 아들처럼 너희들도 아픈 것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언질, 그것을 통해 결과적으로 군대의 사기를 높이려는 책략으로 해석할 수 있고, 다른 한 편으로는 너희들을 승리자로써 고향으로 데려가는 것이 병사들의 아버지이자 나라의 아버지, 가부장인 자신의 임무라는 선언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자신을 병사들의 아버지, 가부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에 친아들 이야기를 꺼낸 것 아닐까). 동오의 군사들이 떡을 먹는 장면도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장면에서는 동오의 장군들과 병사들이 자기 떡을 하나씩 덜어서 주유에게 준다. 이는 주유가 조조를 물리치고 병사들을 고향에서 기다리는 가족과 다시 만나게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짊어진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동짓날은 헤어진 가족이 다시 만나는 날이라는 여러 차례 반복되는 대사가 있기 때문에(그리고 병사들이 떡을 먹는 것은 동짓날의 풍속에 따른 것으로 나온다) 이 장면을 고향, 가족과 연결해서 생각하지 않기란 어렵다. 주유와 그의 아내 소교와 관련된 이야기도 이러한 주제를 강력하게 각인시킨다. 소교는 주유의 아이를 갖고 있으며 주유는 조조를 물리치는 것과 동시에 소교를 구해서 자신의 가족을 지켜야 할 임무를 갖게 되는 것이다. [적벽대전 2 : 최후의 결전]에서는 별로 드러나는 것 같지 않지만(소교가 조조에게 자기 때문에 전쟁을 벌였느냐고 묻자 조조는 진짜 그런 것 같으냐면서 웃는다) 손권의 아내인 대교와 주유의 아내인 소교를 취하는 것이 조조의 바람이라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주제가 부각되는 건 제작진이 삼국지를 대중적인 결과물로 탄생시키고자 지나치게 노력했음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보수적인 대중들이 친숙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주제. 그러나 엉뚱하게만 느껴지는.


  원래대로라면 이 영화에서 여배우들이 등장할 여지는 거의 없었다. 손권의 어머니인 오태부인이 잠깐 나오는 것을 빼면 연의의 적벽에서 싸우는 대목에서는 여자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요새 세상에 [아라비아의 로렌스] 같이 여배우들이 나오지 않는 영화를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제작진은 확실히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 같고, 그래서인지 소교와 손상향의 이야기가 덧붙여졌으며 그 자리는 임지령과 조미 같은 스타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영화 줄거리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손상향의 이야기에 반해 소교 이야기는 대중들에게 익숙한 적벽 이야기까지 이리저리 뒤흔들 정도가 되었고. 그런데 영화에 흐르는 반전의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고대의 전쟁에 대한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해석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달리 말하면 당대의 관점과 역사를 충실히 반영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 주유가 전장을 돌아보면서 이 전쟁에는 승자가 없다고 했을 리 만무하다. 동오의 장수들 입장에서 적은 군대로 조조를 물리치고 강남 지역에 대한 손가의 패권을 지켜낸 이 전쟁을 패배로 볼 까닭이 없지 않은가. 가족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생각해 본다면 영화에서는 조조의 군사들 다수, 아울러 동오의 군사들이 죽었고 죽은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너희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한, 혹은 내가 너희들이 너희 가족과 재회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양측 지휘관은 모두 약속을 지키지 못한 패자가 된다. 하지만 주유는 소교와 그녀가 가진 아이, 즉 자신의 가족을 조조에게서 지켜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하기는 난감한 면이 있다. 그 전에 나오는 손상향과 손숙재 이야기에는 전쟁의 허무함을 드러내려고 한 의도가 강하게 담겨 있지만 여기에도 손상향이 손숙재에게 너를 고향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하는 대사가 있다. 주유의 탄식은 조조와 자기를 패배자라고 생각해서 한 말인가, 전쟁의 참상을 보고 한 말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그런데 무슨 이유였든 이 말은 공허하고 감상적으로, 얄팍하게 들리고 그런 말을 하면서 조조를 놓아주는 마지막 장면은 어처구니없다. 이제껏 열심히 전쟁을 박진감 넘치게 보여주다가 마지막 부분의 몇몇 장면을 통해서 전쟁이 사실은 비참하고 허무한 것이라고 말하면 그게 곧이들리나? 주유가 정말 전쟁이 허무하며 병사들의 목숨이 아깝다고 느꼈으면 조조 한 사람을 잡아서 앞으로 일어날 전쟁을 막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주유와 제갈량 중심으로(주유 쪽에 더 무게가 실리지만) 영화가 돌아가면서 심각하게 훼손된 것은 조조의 캐릭터이다. 연의의 조조는 비열한 수단으로 다른 사람들 목숨을 쉽게 앗아가는 인물이다. 연의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물론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조조라도 장간을 남들이 보는 앞에서 독살할 수 있었을까? 장간을 남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비열한 방법으로 살해한다는 것은 자신이 주유에게 속았다는 것을 만인 앞에서 인정하는 꼴이 되는데 조조가 과연 그렇게 했을까? 앞서 말한 것과 겹치지만 조조는 이 영화에서 보통 이상으로 용렬하게 묘사된다. 후퇴를 권하는 부하 장군에게 화를 버럭 내는 모습, 주유에게 속은 분노 때문에 빨리 결판을 내자고 성을 내는 모습(주유는 이런 점도 다 헤아리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멍한 표정으로 지도를 보다가 다른 곳은 다 내게 무릎을 꿇었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았다고 읊조리는 장면에서는 전략가로서의 면모를 전혀 찾을 수 없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추하게 인질극까지 벌이고! 인질극만 하면 말을 안 해, 소교를 살리고 싶으면 칼을 버리라는(칼을 버리라고 했나 무기를 버리라고 했나 항복하라고 했나, 여하튼), 귀가 썩을 것 같은 유치한 대사까지 관객들에게 듣게 한다. 이건 뭐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네요. 이 영화에서의 조조는 악역은 악역이되 위험하고 교활한 간웅이 아니라 치사한 변두리 깡패나 삼류 살인자에 가깝다. 쓰다 보니 굉장히 두서없는 글이 된 것 같은데, 결론은 이 [적벽대전 2 : 최후의 결전]은 박진감 넘치는 전쟁 장면을 빼면 단순하고 감상적인 무협영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 전쟁 장면은 볼만하다. 이 영화에서는 장군이든 병사든 가리지 않고 화살 세례를 받는다. 그러나 삼국지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연의에 가까운 것도 아니고 정사에 가까운 것도 아닌 이 어정쩡한 창작물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 하나를 보고 오우삼의 최근 작품들까지 도매금으로 넘기긴 어렵겠지만, 오우삼에게 앞으로 [영웅본색] 이상의 영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적벽대전 2 : 최후의 결전]에서는 오우삼 영화 특유의 비장미와 독특한 형식의 액션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화려한 전장의 스펙터클과 안전하고 대중적인 노선, 보수적인 이데올로기가 채우고 있다.


PS. 먼 훗날까지 살아남은 감녕(나카무라 시도우)을 영화에서 죽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이 영화 만든 회사에서는 삼국지 영화화를 여기에서 마무리하려 하는 것 같다. 적어도 오나라 이야기는 할 수 없겠지. 어디 감녕을 빼고 오나라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