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

흑객


흑객 (黑客; The Angry Guest, 1972)

감독 : 장철
출연 : 강대위, 적룡, 방인자, 진성, 리칭, 구라타 야스아키, 김기주, 볼로 영

<흑객>은 장철 감독의 영화 <권격>의 속편격인 작품이다. 한국과 홍콩의 합작영화이며 한국의 악역 전문 배우인 김기주가 야쿠자 중간보스역으로 잠깐 등장한다. 한국어 더빙이 되어있고 화면에 강대위라는 이름 대신 '깡따위'라고 크게 나온다. 전편과는 달리 곡봉은 출연하지 않는데, 이 영화에서 특기할 것은 장철 감독이 야쿠자 두목 야마구치 역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인질로 잡으려는 강대위를 뒤로 넘겨버리는 숨겨진 무술 실력자로 나온다.

전편에서 범극(강대위), 문열(적룡) 형제와 싸우다 다리가 부러진 잔인한 악당 강인(진성)은 태국의 감옥에서 교도관들을 죽이고 탈옥한다. 강인은 문열 형제의 어머니를 죽이고 문열의 애인 옥란(리칭)을 납치하는데, 그는 옥란을 이용하여 문열 형제를 제거하려고 하지만 도쿄에 있는 조직의 보스 야마구치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옥란을 데려와서 문열 형제를 자신들의 사업에 끌어들이려 한다. 문열 형제에게 복수하기 위해 문열이 운영하는 도장의 문하생들을 마구 죽이던 강인은 문열 형제에게 잡히지만 이때 나타난 명자(방인자)라는 여자가 옥란을 찾고 싶으면 도쿄로 오라는 말을 남기고 강인을 데려간다. 강인 역시 조직의 하수인에 불과했던 것이다. 문열 형제는 도쿄로 가서 명자를 이용, 옥란을 구출하여 홍콩으로 돌아간다. 그러자 야마구치는 가라데의 고수 가츠(구라다 야스아키)와 그가 고른 부하들을 보내 문열 형제를 제거하고 아울러 조직의 체면을 깎은 명자마저 죽이려고 한다. 가츠에게 몸을 빼앗긴 명자는 야마구치가 자신을 죽이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을 알고 범극에게 전화를 걸어 가츠와 야쿠자들이 범극이 일하는 공사장을 급습하려는 계획을 세웠음을 알려준다.

몇 장면이 잘려있다. 야쿠자가 범극을 저격하는 장면이나 제일 마지막 장면이 진행되다가 끊기는데, 필름이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잘린 것은 좀 안타깝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야쿠자를 묘사하는 대목인데, 그들은 조직에 해를 끼친 자는 할복한다는 규율을 갖고 있다. 일본 그림을 그린 벽이 스윽 위로 올라가면 그 뒤에 공간이 있는 것이 보이는데 그들은 거기서 할복을 한다. 할복할 때 목을 쳐주는 사람도 있다. 또한 강대위의 팬이라면 양복입고 검은테 안경을 쓴 뼛속까지 시크한 강대위를 보고 엄청나게 즐거워할지도 모른다. 적룡과 강대위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데 두 사람의 팬이라면 싫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 외의 관객들에게는 별로 추천해주고 싶지 않은 영화다. 문열 형제가 야마구치를 만나러 도쿄로 갔을 때, 카메라는 별 이유 없이 도쿄 거리를 쭉 훑는다. 마치 관광하는 것처럼. 어쩌면 홍콩 관객들도 한국 관객들처럼 도쿄의 풍경을 보고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게 영화의 맥을 끊는다. 그것 외에도 <흑객>은 느슨하고 극적인 재미가 별로 없는 영화다. 배다른 형제의 재회라는 극적인 요소는 전편에서 이미 마무리된 것이고, 납치된 애인을 구출하는 이야기도 영화를 끝까지 끌고 가지 못한다. 홍콩으로 돌아온 뒤의 이야기는 왜 넣었을까?
또한 장철 감독이 원래 신체 훼손의 극한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흑객>의 잔인함은 아무런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잘려서 아쉽다고는 했지만 사실 <흑객>의 결말도 시시한 것으로, 마치 한국의 60년대 70년대 반공영화처럼 보일 정도다. 간단히 결론을 얘기하면 <흑객>은 장철 감독의 다른 무협 사극과는 비교할 수도 없고, 장철 감독의 다른 현대물인 <무명영웅>이나 <권격> 보다도 뒤떨어진다. 이 영화의 재미는 배우를 보는 것 이외에는 없다. 강대위와 적룡 외에도 이소룡의 <용쟁호투>에서 근육질 무사로 나와서 이소룡의 발차기에 쓰러졌던 볼로 영이 나온다. 그는 관광객으로 가장해서 적룡의 도장을 찾아가 행패를 부리는 야쿠자로 나오는데 두꺼운 목과 가슴근육, 검은 얼굴이 특히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