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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참새; 문작(文雀; Sparrow, 2008) - 두기봉이 그리는 고수들의 강호, 홍콩

참새; 문작(文雀; Sparrow, 2008)
감독 : 두기봉
주연 : 임달화, 임희뢰, 임가동 노해붕 나영창 장만원 임설 로진순
시나리오 : 은하창작조(银河创作组), 진건충, 풍지강
촬영 : 정조강(HKSC)


원래는 별로 끌리지 않던 작품이었는데, 우연히 좋아하는 분 블로그에서 "춤과 노래가 없는 뮤지컬, 홍콩 가보고 싶단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는 글을 읽고 궁금해서 보게 됐다.


어느 날 임달화의 방으로 참새가 날아든다. 세 명의 소매치기 동생들과 함께 전문 소매치기로 생활을 유지하는 임달화는 취미가 사진 찍기. 삼각대도 가지고 다닐 뿐 아니라 필름 카메라에 암실까지 차려놓고 현상도 직접 한다! 다른 세 동생들의 삶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지만 역시 넉넉하고 여유로운 인상을 준다. 이런 그들 사이에 묘령의 여자인 임희뢰가 끼어들면서 사건은 발생한다.


임희뢰는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영화 내내 길 찾는 사람처럼 뛰어다닌다. 번체자로 쓰여진 간판이 빽빽하고 광동어 대화가 오가는 이 홍콩이란 도시숲에서, 오로지 그녀만이 보통화로 이야기하고 그녀의 여권이 화면에 잡힐 때만 간체자가 나온다. 자신을 옭아 메고 있는 보스에게서 탈출하고자 하지만 그 이유를 관객은 알 수 없고 심지어 그녀가 도움을 청하는 소매치기 넷도 알지 못한다. 뭣보다 이 사단을 일으킨 이 여자의 속사정이 무엇인지에 두기봉이 전혀 관심 없는 듯하다. 죽어라 뛰어다니다(힐은 높고 가방은 명품) 모두의 이유가 되고 행동의 구실이 되어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임희뢰는 포스터만 봤을 때는 팜프 파탈 같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오히려 새장 속 참새처럼 연약하고 갈 길이 어딘지조차 모르는 나약한 존재로 보인다. 딱 한 장면, 임희뢰의 캐릭터가 ‘대상’이 아닌 ‘자체’로 순식간에 다가오는 장면은 여권을 건네주며 “떠나라”는 보스가 자가용에 앉아 시가를 물었을 때 그녀가 하는 대사를 들었을 때다.
“담배 좀 줄여요.”

보스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알았다고 대꾸하더니 달리는 차 안에서 펑펑 운다. 놓아주어야 하는 사랑 때문에 우는 건지 녹 슬은 실력이 먹어버린 나이를 상기시켜 우는 건지 알 수 없다만. 어쨌든 이 강호의 고수는 약속을 내걸고 그 약속을 깨끗하게 지킨다. 


그리고 그 고수에게 실패 시 손을 자르겠다며 여자를 풀어달라는 청을 하는 임달화. 동생들이 여자에게 말려들어 일을 만들까봐 말리고, “아직 네 실력으로는 어림 없어”라던 임달화는 보스의 피라미 취급에 발끈해서 한판 승부를 제의한다. 그리고 ‘굉장하다’고 숱하게 들었던 장면. 빗 속의 소매치기들이 벌이는 한판 대결. 영화 초반부터 너무나 굉장했던 음악과 촬영이 배우들의 몸짓과 어우러지면서 일대 장관을 보여준다. 정말이지 이건 말로 형용할 수 없으리만치 우아하고 아름답다. (아 금마장 사랑해야겠다, 이 작품에 촬영상과 음악상을 준 건 정말이지 너무나 당연하고 탁월한 선택이다)


이 아름답고 우아한 영화 <참새>의 주인공은 결국 ‘홍콩’이라는 도시이다. 4년간 촬영됐다니 지금은 또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을지 모를 일이다. 다 보고 나니 홍콩 가고 싶어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