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담

영웅의 나이듦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몇 년전 얘기다. 처음 <조폭마누라3> 의 제작 발표회 사진을 보고 한 초로의 남자가 누군가 했다. 분명 무척이나 낯이 익은 얼굴인데도 늘어진 주름이며 움푹 패인 목덜미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상했다. 혹시나 하면서도 아니겠지 싶었다. 솔직히 누군가가 적룡이라고 말하기 전까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린 시절 즐겨보던 영화에서 듬직한 대형의 풍모를 풍기던, 그래서 언제까지 그 모습으로 남아있을 것 같던 영화배우의 나이 듦을 인정하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를 처음 보게 된 건 <영웅본색 - 英雄本色> 에서였다. 막 교도소에서 출소하고 새 출발을 하려던 그가 동생 (장국영) 에게 험한 꼴을 당하면서도 아무 말도 못하고 뒤돌아서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아직 사춘기도 오지 않은 코흘리개 녀석이 쓸쓸하다는 게 뭔지 알기는 했을까 만은 그냥 그랬다. 거의 절대적으로 보였던 형에 대한 믿음과 존경만큼이나 동생이 받았을 배신감과 상처도 컷을 테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죗값을 알기에 그렇게 돌아서서 혼자 담배를 피우던 뒷모습이 더 쓸쓸해 보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 암흑가를 주름잡던 그가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 자신 때문에 아버지는 죽고 그로 인해 동생은 형제의 연을 끊어버리고 절친한 친구 (주윤발) 는 새파란 후배 (이자웅) 에게 배신당한다. 참으로 인생무상이다. 어린 동생은 왜 이렇게 내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느냐고 분풀이라도 할 수 있고 친구는 다시 재기할 수 있다는 부질없는 꿈에 사로잡혀 있기라도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억장이 무너지고 기가 찰 노릇인데도 그는 애써 지나간 과거를 되돌리기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영웅본색> 에서 적룡은 평생 암흑가에서 잔뼈가 굵은 남자의 뒤늦은 피로감을 훌륭하게 연기해 낸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냉소나 체념이 아닌, 오롯이 현실과 마주하는 순간이다. 영화는 시대착오적인 영웅이 세상과 부딪히는 고통과 상처로 가득 차 있지만 적룡은 한 순간도 대형의 기품을 잃지 않는다. 아무리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졌어도 큰 형은 큰 형인 것이다. 마침 <게임의 법칙> 을 만든 장현수 감독이 <영웅본색> 을 리메이크 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과연 누가 그의 아우라를 따라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