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넥트 (保持通話; Connected, 2008)
감독 : 진목승
각본 : 진목승, 원금린
출연 : 고천락, 서희원, 장가휘, 유엽, 장조휘, 번소황, 진혜산
아주 유능한 공학 디자이너인 것 같은 그레이스 왕(서희원)은 딸인 팅커를 학교에 데려다 오는 길에 봉변을 당한다. 괴한들이 그녀가 몰던 차를 들이받아버린 것. 정신이 든 그레이스의 눈앞에서 그녀네 집 가정부가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악당들은 그레이스를 외딴 창고 같은 곳에 가둬버린다. 나중에야 밝혀지지만 악당들은 그레이스의 동생인 로이(진가락), 더 정확히 말하면 로이가 찍은 비디오를 노리고 있었다. 그레이스는 창고에서 악당들이 부숴버린 전화기를 몰래 고쳐 외부와의 통화를 시도하고, 두 번의 시도 끝에 밥(고천락)이라는 남자와 통화를 할 수 있게 된다.
밥은 채무 수금원 일을 하는 것 같은데, 그의 동료들이 험악한 깡패들인 반면 그는 소심하고 연약하기까지 한 남자다. 바쁜 나머지 어린 아들에게 소홀했던 밥은 호주로 떠나는 아들을 공항에서 배웅하기로 약속한다. 밥은 그동안 아들과의 약속을 거의 지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 그레이스의 전화를 장난으로 생각했던 밥은 근처를 지나던 교통경찰 파이(장가휘)에게 전화기를 건네준다. 파이는 원래 유망한 형사였지만 지금은 교통경찰로 영락한 신세. 옛 부하였던 형사반장(장조휘)에게 멸시를 당하는 처지다. 파이는 그레이스와 통화를 하려 하지만 마침 악당들이 돌아온 터라 그레이스는 말을 잇지 못하고, 파이는 이것을 장난으로 생각하고 만다. 하지만 밥은 악당들이 그레이스의 눈앞에서 로이의 친구를 쏴 죽이는 총성을 전화를 통해 듣게 되고... 그레이스를 구하기 위한 분투는 당분간 밥의 몫으로 남겨진다.
대단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커넥트]는 꽤나 재미있는 영화다. 제일 재미있는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악당들이 팅커를 납치한 뒤에 그 뒤를 쫓는 밥이 도심에서 카체이스를 벌이는 장면과 그 전후로 이어지는 부분들. 악당들은 밥이 쫓아오는 줄 전혀 모르고, 밥 혼자서만 죽어라 악당들을 쫓는다. 이 카체이스 장면이 주는 스릴의 근원은 밥이 타고 있는 차가 소형차라는 것인데, 밥은 그레이스와의 통화를 끊을 수 없기 때문에 통화를 해가며 불안정하게 운전을 하고, 그의 작은 차는 어디에 부딪칠 때마다 한군데씩 아작이 난다. 이건 주인공의 자동차가 악당의 자동차에 맞서 대결을 벌이는 게 아니라, 아예 그 부근에 있는 모든 자동차와 도로에 맞서 대결을 벌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악당의 자동차는 구석으로 쑥 빠져 있고. 밥이 차를 바꿔탄 뒤에는 영화가 갑자기 코믹해지는데, 특히 그레이스가 밥의 전화기를 손에 넣은 남자를 회유하기 위해 뻥을 치는 대목이 압권이다. 밥이 병원에서 총던지는 장면도 최고!
다만 이 부근을 지나면 영화의 긴장이 좀 풀어진다. 그때까지는 영화는 어떻게든 그레이스와의 통화를 이어 나가려는 밥의 분투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통화를 방해하는 다양한 장애물을 배치한다. 예를 들면 배터리가 다 떨어져가는 상황이나 전화기가 남의 손에 들어가는 상황 같은 것들. 혹은 통화를 이어가기 힘들게 만드는 역주행 상황 같은 것들. 그러나 이후부터는 영화가 밥 중심에서 그레이스-밥-파이 세 사람 중심으로 분산되는 양상을 보인다. 통화를 끊으면 안 된다는 모티브도 밥의 전화기가 반박살이 나면서 희미해지고. 그때쯤 나는 이 영화가 재난 다큐멘터리 같다는 느낌을 얼핏 받았는데, 왜 한 가지 엄청난 재앙에 부딪친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연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말이다. 그런 느낌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아마 이 영화의 악당들이 철저하게 기능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새 영화에서 이렇게 재미없고 멋없는 악당들을 만나기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곽덕능(유엽)이 지휘하는 악당들은 정체가 뭔가? 처음 그들은 뭔가 꿍꿍이를 감추고 있는 갱단처럼 보인다. 나중에 로이가 입원한 병원에서 마주친 경찰들에게 그들은 인터폴 신분증을 제시하는데, 사전에 아무런 정보나 복선이 없었기 때문에 관객들은 대부분 그들이 인터폴을 위장한 갱단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놀랍게도 그들은 진짜 인터폴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같은 인터폴에 몸담고 있던 동료 경찰관이 아니라 처음부터 갱단의 갱들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정보를 전달하거나 명령을 내리는 것 외에는 서로 말을 주고받는 법도 없고, 일체의 감정도 나누지 않는다. 애초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 한탕 하고 외국으로 튀는 것? 아니면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것? 원래 갱단이었다면 모르겠거니와, 왜 인터폴이었던 그들이 변심해서 마약 거래를 하고 살인을 저지르는지 영화는 일체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은 증오하거나 혹은 이해하고 동정할 수 있는 인간적인 대상이 아니라 주인공들을 곤란에 빠뜨리기 위해 창조된 존재일 뿐이다. 마치 대자연의 재앙처럼. 영화가 이 악당들에 대해 조금만 설명해줄 수는 없었을까?
그 외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점들이 몇 군데 더 있다는 것을 지적해 두고 싶다. 클라이막스가 좀 꼬여 있는 건,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었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고. 그러나 밥이 공항에서 아들을 훔쳐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처럼 꽤 근사한 부분도 있었고, 형사반장이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는 장면의 연기 같은 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장조휘는 뭔가 상황이 변했다는 걸 대단히 근사하게 표현해냈다. 그레이스와 밥은 마지막에 단 한 번 만나는데, 두 사람의 관계도 행복하게 커넥팅 된 셈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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