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

장강7호 - 長江7號, 2008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설의 여래신장을 재현해 낸 뒤 롤리팝을 손에 쥔 채 동심으로 돌아가던 <쿵푸허슬> 의 연장일까. 주성치의 새 영화 <장강7호 - 長江7號, 2008> 는 어린 아이가 주인공이다. 주성치는 돼지촌의 주변부에 머무르다 중반에 자취를 감추던 <쿵푸허슬> 보다 서너 발짝 더 비켜서 있다. 가족영화라는 한결 더해진 말랑말랑함에 <소림축구> 이전의 주성치가 아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주성치의 아들을 연기한 꼬마의 놀라운 연기와 외계생물체의 귀여운 재롱에 웃음이 나다가도 지지리 가난한 아빠와 아들 사이의 뻔한 궁상에 살짝 눈물이 흐르는 것은 여전히 주성치의 영화에서 발견하게 되는 즐거움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살기에도 모자란 주제에 아들 샤오디 (서교) 만큼은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 아버지 (주성치) 는 여느 날처럼 쓰레기장에서 쓸 만한 물건을 뒤지다 이상하게 생긴 녹색의 물체를 발견한다. 언뜻 공처럼 생긴 모양새지만 이내 환골 탈퇴한다. 그래도 이상한 건 마찬가지. 싸구려 플라스틱 장난감을 연상케 하는 녹색의 몸체에 비율을 무시한 얼굴에는 털이 북슬북슬하다. 턱과 배를 쓰다듬으면 자지러질듯이 좋아하는 게 영락없는 강아지의 모습이다.


   <장강7호> 는 익히 보고 기대해 온 환상을 코미디의 소재로 삼는다. 단순히 한 영화의 장면을 패러디 하는 게 아니라 장르자체를 비틀어버린다. 대상은 장강7호다. 샤오디는 외계생물체에게 장강7호라 이름을 붙여주고 별 볼일 없는 일상에 엄청난 활력을 줄 것을 바란다. 언뜻 기대는 현실이 되는 듯하다. 장강7호는 대단한 쿵푸실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톱과 망치로 마법의 선글라스를 만들어 시험에서 백 점을 맞게 해주더니 용접과 드릴로 만든 운동화는 전설의 쿵푸 비급인 여래신장 (여기에서 샤오디는 쿵푸허슬을 그대로 재현한다) 까지 가능하게 한다.


  한낱 장난감 로봇에 불과한 장강1호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다. 살다보면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더니 맨날 학교에서 왕따만 당하던 샤오디는 완전 땡잡은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장강7호는 출생지가 남다르다는 환상을 무참히 깨버린다. 샤오디에 일방적인 기대에도 불구하고 장강7호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은 거의 없다. 외계생물체라는 종족으로서 유일무이한 특이점은 망가진 것을 재생할 수 있는 능력뿐인데 그마저도 한 번 기를 쓰고 나면 앓아누워야 한다. 환상을 배반한 초라한 현실에도 굴하지 않는 낙천적인 성격과 따발똥 (말 그대로 똥을 연사한다. 적절한 효과음에 배경도 변기 위. 진짜 화장실 유머다) 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그러니까 <장강7호> 는 인간 루저로도 모자라 외계 루저까지 합세하는 범우주적인 주성치의 영화다. 외계에서 왔다고 루저가 엘리트가 될 순 없는 일. 덩치 큰 개에 호기롭게 맞서다 죽지 않을 만큼 얻어맞은 장강7호의 부어터진 눈은 영락없다. 그 장면만으로도 <장강7호> 는 그냥 주성치의 영화다.


   낡다 못해 헤진 신발은 <소림축구> 처럼 전면에 등장하진 않지만 <장강7호> 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소품이다. 심지어 영화는 입이 벌어진 신발을 기우는 주성치로부터 시작한다. 찢기고 더럽혀져도 버릴 수 없는 신발은 완고한 세상의 구박과 무시에도 괘념치 않 (으려 하) 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방식이자 다짐이다. 장강7호의 유일한 능력으로 복원하는 것은 단순히 고장 난 선풍기만이 아니다. 영화의 규모가 커진 만큼 좀 더 매끈하게 다듬어졌지만 여전히 그 희로애락의 중심에는 주성치가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