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딩 유(孤男寡女; needing you, 2000)>
감독 : 두기봉, 위가휘
각본 : 위가휘, 유내해
주연 : 유덕화, 정수문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이니 당연히 남녀주인공의 사랑 이야기가 주 내용인데 사실 이 부분은 다른 영화와 별 차별점이 없다. 특히 후반부에 각자의 연적이 등장하면서부터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관습적이고 빠르게 엔딩을 향해 질주한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재밌는 부분은 유덕화와 정수문의 성격을 묘사하는 부분이다.
우선 유덕화는 회사 부장에 잘난 외모에 자신만만한 태도에....별 아쉬울 것 없어 보인다. 그런 그가 대륙 회사 사람과의 접대를 마치자마자 억지로 마신 술을 토해내며 “사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하는 모습은 그래서 찡하게 다가온다. 뒤늦게 깨달은 사랑을 잡기 위해 남몰래 오토바이를 사서 연습하는 모습은, 과연 이 사람이 <천장지구>의 주인공이 맞나 싶게 의아하면서도, 여자가 바라는 게 단순히 오토바이 타고 못 타고가 아니란 걸 그도 알고 나도 아는데도, 그렇게라도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소심한 부분이 의심 없이 이해가 된다. <니딩 유>의 유덕화는 마치 <천장지구>의 유덕화가 사회물을 먹고 좌절과 실패를 겪은 모습 같다. 그래서 유덕화가 1인 2역으로 <천장지구> 캐릭터로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해 사랑의 전령사 역할을 하는 모습은 꿈 같으면서도 오히려 굉장히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본 유덕화의 어떤 연기보다 이 영화에서의 연기가 난 최고로 좋았다)
정수문은 결국은 차이기만 하는 덜렁대는 여자로 등장한다. 자신감 없기는 유덕화와 별 차이 없다. 불안하면 쇼핑으로 카드를 미친 듯이 긁어대고 휴지를 꺼내 계속 주변을 청소한다. 시도 때도 없이 불안해서 청소한다. 이런 모습이 미소 짓게 만들고 이들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구구절절 풀이하는 게 아니라, 몇 가지 상징적이고 디테일한 부분 덕에 이들은 멀리 있는 스타가 아니라 내 일면을 비춰주는 거울로 다가온다. 동질감이 획득되는 순간, 마냥 이들의 사랑을 응원하게 된다. 현실적이든 아니든 이제 상관없다. 이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나 역시 이들의 모습을 확인하며 환호한다. 이렇게 <니딩 유>는 로맨틱 코미디가 가져야 할 제일 큰 덕목을 증명해내는 거다. 빼놓을 수 없는 멋진 주제곡과 함께.
《러브 온 다이어트;수신남녀(瘦身男女; Love On A Diet, 2001)》
감독 : 두기봉, 위가휘
각본 : 위가휘, 유내해
주연 : 유덕화, 정수문
<러브 온 다이어트>의 가장 신파적인 장면은 후반부에 나온다. 사랑하는 여자의 바람을 이뤄주기 위해 인간 샌드백이 된 남자는 길바닥에서 처참히 얻어맞아 쓰러진다. 그 순간 그의 사랑을 받은 여자는 환호하는 사람들 틈에 있다. 이건 아주 익숙한 장면이다. 이 장면을 만들고 싶어 이 영화를 기획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주 관습적인 장면인데 이 장면까지 도달하기 위해 위가휘와 두기봉이 선택한 설정은 몹시 다르다. 그게 굉장히 새로웠고, 생각하게 만들어주더라.
<러브 온 다이어트>에서 남자가 이뤄주고자 하는 여자의 바람은 날씬 해 지는 거다. 뭐 극단적으로 치환해보면, 명품백을 사고 싶어하는 애인을 위해 돈을 벌려고 인간 샌드백이 된 남자로까지 대입해볼 수 있다. 이런 부분이 이 시나리오의 다른 면이다 싶다.
100킬로그램이 넘는 남녀주인공이다. 앞서 말한 이 슈퍼스타들은 거대한 분장을 하고 나온다. <니딩 유>의 흥행으로 이뤄졌으리라 짐작되는 이 팀은 <니딩 유>보다 좀더 예상을 벗어나는 몸으로 등장한다. 식욕을 참지 못해 상대방이 자리를 잠깐 비운 사이 그 사람의 음식을 입에 털어넣고 쉴새없이 뭔가를 먹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여주인공을 맡은 정수문은 한 술 더 뜬다. 전형적인 민폐형 캐릭터이다. 눈치도 없고 그러면서 계속 먹고, 그 돈을 충당할 능력이 안돼 유덕화에게 빌붙는다, 미안하단 말과 함께. 그래서 그런 그녀를 보필하고자 싶어하는 유덕화의 행동은 사랑하기 때문에라고 이해하고 싶어도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영화는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붙이지만 그들의 시각은 둔하고 눈치없고 먹을 것만 밝히는 식의 인간이 뚱뚱해진거다란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점이 굉장히 불쾌하더라. 공정해야할 의무는 없지만 이렇게 스테레오 타입으로 인간을 분석하는 게 상당히 짜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러브 온 다이어트>는 뇌리에 박히는 영화였다. 왜 그럴까? 모르겠다. 급조된, 너무나 어색한 앤딩에도 별 말을 할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나쁘다는 점은 다 끌어붙인 듯한 영화인데도, 뭐라 말하기가 그렇다. 그냥 좋더라. 그냥 생각하게 만들더라. 닥치고 생각하게 만들더라.
아주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어주는 거지. 에휴....
내가 기대했던 결말은 체중과 상관없이 그들의 상태를 인정하고 다시 뚱뚱해져 행복해지는 커플이었다. 영화는 그렇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순간 그렇다. '어차피 너도 이들이 어떤 상태이던 사랑을 확인하는 걸 보고 싶은거잖아, 그런데 상관없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져서 굳이 다시 뚱뚱해지는 걸 보여줘야 직성이 풀리는 거야' 묻는 것 같더라.
<러브 온 다이어트>의 주제곡도 정말 좋다. 유덕화의 노래가 이 영화에서 먼저 나온다. 그때는 몰랐다. 그러다 뒤이어 정수문의 노래가 나온다. 이런! 표준어다. (내가 본 버전은 표준어 더빙판이었다) 굉장히 놀랐다. 정수문이 표준어로 노래를? 찾아봤더니 홍콩판은 광동어로 부른다. 아마 대륙 시장을 노리고 더빙을 하면서 노래도 표준어로 새로 부른 듯 싶다. 그렇다면 누가 그렇게 시킨 거지? 밀키웨이에서 요구한 걸까, 아님 정수문과 유덕화라는 초특급 가수들이 자청한 건가?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소름 끼쳤다. 이제 이렇게까지 세상은 변했구나 싶었다.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강7호 - 長江7號, 2008 (7) | 2008.08.22 |
---|---|
[번역] 반환 이후의 홍콩영화 BEST 10 (1) (8) | 2008.08.21 |
당랑 - 螳螂, 1978 (4) | 2008.08.18 |
신불료정(新不了情; Cest la vie, mon chéri, 1993) (9) | 2008.08.16 |
대호출격 - 老虎出更, 1988 (4) | 2008.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