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

매드 디텍티브 (神探; Mad Detective, 2007)




매드 디텍티브 (神探; Mad Detective, 2007)

감독 : 두기봉, 위가휘
각본 : 위가휘, 구건아
출연 : 유청운, 안지걸, 임가동, 임희뢰, 이국린, 이채저, 임설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영화 보기 전엔 가급적이면 읽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영화의 결말을 이야기하고 싶으면 돌려서 말씀해주세요.)

 
영화가 시작되면 카메라는 탁자 위에 길게 늘어놓은 다양한 종류의 칼들을 쭉 훑고 있는데, 번 형사(유청운)는 그 중 하나를 잡고 매달아놓은 돼지 시체를 난자하고 있다. 뭐하는 짓일까? 그의 눈빛이 좀 이상해 보인다. 도중에 들어온 신입 호 형사(안지걸)에게 다른 형사들은, 번 형사가 범행을 재연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어서 번 형사는 호 형사로 하여금 자신을 가방에 담아 계단에서 떨어뜨리도록 한다.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번 형사는 가방에서 나오자마자 범인을 지목하고 사건은 해결된다. 비록 이틀 동안 같이 일한 것뿐이지만 호 형사는 번 형사의 수사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은 모양이다. 5년 후, 형사직에서 쫓겨난 그를 찾아가서 왕국주 형사(이국린) 실종 사건 수사를 부탁한 것을 보면. 두 사람은 왕 형사가 실종되던 날 그와 함께 고철도둑을 잡으러 잠복 근무를 했던 형사 치와이(임가동)의 뒤를 캐게 된다.

  번 형사의 수사 철학을 알 수 있는 장면 하나를 이야기해보자. 두 형사는 치와이를 따라 식당에 갔다가 그와 다툰 후 밖으로 나오는데,
차를 몰던 번 형사는 호 형사에게 이 사건은 총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왕 형사가 잃어버린 총이 범행(편의점 강도사건 및 현금수송차 강탈사건, 도박판의 강도사건)에 사용되었다고 호 형사가 대답하자, 번 형사는 답답하다는 듯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가슴으로 느껴보라고 말한다. 수사를 할 때 직관을 중시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셈인데, 사실 번 형사의 수사는 직관을 넘어선, 초직관의 영역에 속해 있다. 아무리 뛰어난 직관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범인과 피해자의 흉내를 내는 것만으로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기란 불가능한 법이니까. 번 형사의 또 다른 능력은 사람의 내면에 있는 다른 인격, 소위 다중인격을 보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번 형사의 이 능력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영화의 설정은 해리성정체장애를 바르게 묘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번 형사에 따르면 세상 사람들 중에서 다른 인격을 지니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고(인격이 하나 뿐인 과장의 퇴직 선물로 번 형사는 자기 귀를 준다. 존경의 표시라나), 그 인격은 영혼처럼 홀로 방황하기도 하며 자기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 번 형사는 심지어 그 인격을 다른 사람에게서 떼어내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번 형사라는 존재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무당 아닐까? 번 형사는 낮에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수사의 방향이 올바르다는 신의 계시라며 기뻐한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치려는 소녀에게 나는 네가 보인다며 고함을 치는 것, 무장 경호원들 앞에서 총질하는 시늉을 하는 것 등등의 행동 전부가 그를 신들린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 그럼 그를 보는 다른 사람들은 그에게서 무엇을 느끼는가? 이것이야말로 내겐 영화의 핵심으로 보인다. 번 형사의 주변 인물인 메이(임희뢰)와 호 형사의 경우를 통해 그 점을 한번 살펴보자.

 
번 형사의 전처 메이는 그의 능력을 자기 수사에 이용하지만 그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실은 번 형사를 통해 자기가 맡은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려고 왔으면서도, 메이는 번 형사가 병원에 가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다며 그를 거세게 몰아붙인다. 메이의 이런 태도는 번 형사에 대한 혐오 혹은 두려움의 발로 아닐까? 번 형사가 보는 메이의 다른 인격(진혜산)은 마치 귀신 같이 무섭고 신경질적으로 보인다. 이 장면은 누구나 알 수 있게끔 정확하게 표현되지 못한 것 같지만. 호 형사가 번 형사에게 사건 수사를 의뢰하러 왔을 때, 그는 번 형사를 존경하고 있었다. 호 형사는 번 형사의 능력을 사건 해결에 이용하는 것과 아울러 그를 닮고 싶은 의지를 드러낸다. “번 형사님이라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수사하셨을까 생각해 봤죠.” 그러나 번 형사는 호 형사에게 말한다. “자넨 내가 아니야.” 번 형사와 함께 수사를 하면 할수록 호 형사에게 남는 것은 번 형사가 실은 그냥 미친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 그리고 광기를 대할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두려움이다. 특히 번 형사가 걸려오지도 않은 전화를 받는 장면, 그런 그를 지켜보는 호 형사의 모습은 가슴에 와서 박히는 것 같지 않는가? 호 형사의 두려움은 몇 번에 걸친 죽음의 위기와 어우러져 점차 커지고, 마침내 파국을 이끌어낸다.


 

  치와이에게는 인격이 일곱 개 있다. 어느 인터뷰에선가, 감독이 인간의 일곱 가지 죄악을 묘사하기 위해 치와이에게 일곱 개의 인격이 존재하는 것으로 설정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것 같다. 정확하게 읽은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설정이 정확히 영화에 조응하지는 않는 것 같다. 치와이에게는 함부로 살인을 일삼는 폭력적인 인격이 있으니 그것은 분노를 대변한다고 쳐도, 상황을 판단하고 모든 일을 조종하는 냉철한 여성의 인격(유금령)은 어떤 악을 대변한다는 말일까? 치와이의 일곱 인격 중 영화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탐식이라는 악을(그게 악이라면)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는 뚱보(임설)의 인격인 것 같다. 번 형사가 화장실에서 치와이의 난폭한 인격(장조휘)에게 공격을 당했을 때, 치와이의 다른 인격들은 번 형사를 쏘려는 그를 뒤에서 잡아 말린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냉철한 여성의 인격과 쏘지 말라면서 당황하는 뚱보의 인격을 빼면. 그런데 번 형사는 다른 인격들을 제쳐두고 뚱보에게 묻는다. “왜 쏘지 말라고 했지?” 뚱보는 대식가이기도 하지만 가장 소심하고 겁이 많은 인격이기도 하다. 그게 사실은 치와이 본연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것이 아닐까? 번 형사는 그것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에 뚱보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고. 두려움과 나약함이야말로 악의 근원이며, 그것은 인간의 인격을 분열시키고 다른 악을 불러온다. <매드 디텍티브>에 메시지가 있다면 그런 이야기 아닐까?

  안지걸의 연기도 좋지만, 자기 능력을 세상을 향해 쓰려는 열망과 아울러 외로움에 지친 번 형사 역을 맡은 유청운의 연기가 특히 훌륭하다. 유청운이 오토바이에 메이의 인격을 태우고 달리는 장면이나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며 피곤한 얼굴로 주저앉는 장면이 좋다. 그리고 허를 찌르는 마지막 장면, 그 장면에서의 유청운의 표정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좋았다. 무섭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매드 디텍티브]의 명장면으로 꼽는 수많은 거울을 배경으로 한 총격 장면은, 물론 스타일이 두드러지고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있긴 하지만 쾌감을 주는 액션이라고 보긴 힘든 것 같다. 오히려 그런 면에서는 [익사일] 같은 영화가 훨씬 재미있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매드 디텍티브]는 인간의 내면을 잘 드러낸 훌륭한 심리 드라마로 [익사일]과 완전히 같은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분명한 것은, [매드 디텍티브]가 스크린에서 눈을 떼기 힘들 만큼 재미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추신

1. 치와이의 일곱 개의 인격 중에서 셋을 빼면, 나머지 넷의 역할은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영화 초반에 치와이는 왕형사의 지갑에서 천 달러를 훔치는데, 그렇다면 분명히 넷 중 하나는 도둑의 인격이라는 얘기가 된다. 편의점 강도는 난폭한 인격이 한 짓이 분명하지만 도박판을 강탈한 것은 누가 그랬는지 확실치 않다. 어쩌면 뚱보가 아닐 수도 있다. [매드 디텍티브]에는 이렇게 불명확한 점이 몇 군데 있는데 그게 매력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2. 마지막 장면이 이해가 안 되어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찾아서 다시 봤다. 어느 정도 알만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남는다. 현장에 남은 총알의 강선까지 조작할 수는 없을 텐데? 총을 감춘다 해도 다른 총에서 발사된 총알이 있다는 것쯤은 충분히 찾아낼 수 있다. 물론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리라는 것 자체로도 무섭긴 하지만.

3. 번 형사는 메이의 인격 중에서 맘에 드는 부분을 떼어내는데, 진짜 전처의 인격을 떼어낸 것인가, 아니면 번 형사가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인가? 어쨌든 메이의 인격이 번 형사의 앞날을 예견했다는 건 생각해보면 무섭다.

4. [푸른 이끼]에서도 그랬는데, [매드 디텍티브]에서도 인도인 범죄자가 등장한다. 외국인들이 홍콩 사회로 편입되는 모습이 이렇게 영화를 통해 드러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후 동남 아시아인들이 악역이든 선역이든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영화가 나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