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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번역] 안서 인터뷰 - 나는 값 싼 로맨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 이 글은  2009년 2월 26일 <외탄화보(外灘畵報)>에 올라온 안서의 인터뷰 부분을 번역한 글입니다. 원문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출처를 클릭해주세요. 단순 감상을 위한 목적으로 거칠게 번역된 글이며 모든 저작권은 해당 잡지사에 있습니다. 또한 문제가 발생할 시 언제든지 삭제됩니다.   출처 : 이 곳



글/ 이준(李俊)


<첨밀밀>, <남인사십> 등 홍콩의 걸작 로맨스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 안서가 자신의 첫 번째 감독작 <친밀>을 발표했다. <친밀>의 시나리오는 원래 두기봉이 안서에게 써달라고 위탁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시원스럽게 돈으로 자신의 시나리오를 사와 직접 찍었다. “내가 감독을 한 건, 완성될 가능성이 없는 영화의 소재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였다.”안서의 말이다.

“중국인은 늘 로맨틱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사랑해’란 말도 하지 못했다. 난‘사랑해’란 세 글자가 너무 낯간지러웠다.”안서의 말이다.

이렇게 오만하고 지루한 여인이 <첨밀밀>, <남인사십> 같은 무수한 홍콩의 로맨스 걸작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안서는 기자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자신은 로맨스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고 추리 소설만 읽는다고. 그녀는 놀리듯이 “사랑을 누가 몰라요? 누가 안 해본 적이 있어요? 그렇지만 살인이나 방화 같은 일은 어떻게 일어나는지 난 모르거든요.”라고 말했다.

홍콩 최고의 로맨스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된 안서는 최근 감독으로 변신했다. 그녀가 메가폰을 잡은 첫 번째 영화 <친밀>은 정이건과 임가흔이 주연으로, 작년 동경영화제에 참가했고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3번 상영됐다. 3월 이 영화는 대륙에서 상영되는데 시사회에서 대륙 기자들은 “안서의 일관된 섬세한 풍격은 우아하고 따스하다”고 평했다. 

마카오에서 태어난 안서의 본명은 하벽문(何碧雯)이다. 원랑명교숭덕서원(元朗名校崇德書院)에서 공부했고 중학 6학년때 가정 형편 문제로 학업을 중지했다. 18세의 안서는 홍콩으로 건너와 가시(佳視) 방송국의 연예인 훈련반의 주임 조교가 된다. 후에 TVB에 들어와 담가명, 두기봉 등과 함께 일한다.


감독이 된 건 아무도 찍지 않는 시나리오 때문이다

안서의 첫 번째 감독작은 원래대로라면 분명 <월만헌니시(月滿軒尼詩)>어야 한다. 장학우와 탕웨이 같은 스타가 주연인 이 작품이 대중의 관심을 끌 요소가 더 많다. 그러나 그녀는 만유인력(万有引力) 영화사의 사장 강지강(江志强)에게 <친밀>을 먼저 찍고 싶다고 한다. 이유는 <친밀>의 제재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일정한 수준에 다다른 위험이 나에게 매력 있다.”안서의 말이다.


심지어 <친밀>은 영화라고 하기도 좀 난처하다. 시퀀스는 8개이고 16일 촬영했을 뿐이다. 안서의 관심은 여기에 있었다. 대도시, 일군의 무리가 밀폐된 공간에 멍하니 있다, 누군가 매일 다른 한 사람을 만나는데 어느 날 특별한 감정이 생긴다, 이건 사랑일까? 만약 다음 달 그녀가 그 공간에 없어도 그 감정은 여전히 존재할까?

이 영화는 꼭 게임 같았다. 5년 전 어느 날 두기봉은 안서에게 말한다. “내가 로맨스 영화 쓰는 걸 좀 도와줘.” 두기봉은 그 영화를 장면이 다섯 개 정도인 아주 저렴한 영화로 만들 계획이었다. 그 중 한 장면은 한 여인이 날마다 부두에서 한 남자를 기다리는데, 어느 날 밤 그녀는 기다리지 않고 술집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은 <가주투방(加州套房)> 이었다.

안서가 물었다. “그 남자는 누구야? 도망자야?” 두기봉이니 그녀는 자연스럽게 도망자를 연상한 것이다. 두기봉이 대답했다. “아니야! 아니라고!” “그럼 누군데? 어디 사람이야? 그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안서가 재차 물었다. “나도 모르지, 당신 스스로 생각해봐.” 두기봉의 대답이었다.

또 두기봉은 이런 장면을 설명했다. 폭우가 내리는데 차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안서는 다시 “그 장면이랑 아까 부두에서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랑 무슨 관계인데?”물었다. “나도 모르지, 당신이 생각해보라니까.” 두기봉은 여전히 이렇게 대답했다.

안서는 반 년을 곰곰이 생각했지만 게임이 재미없게 느껴져 몹시 고통스러웠다. 나중에 그녀 자신이 주체가 되어 홍콩 로드(도로) 무비를 쓴다. 5개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고 매일 퇴근 후 동일한 사람이 앉은 차가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간다. 이들의 집은 외진 곳에 있어 지하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적이면서 또한 친구이다. 협소한 공간 속에서 사랑 이야기가 생겨난다.

두기봉은 즉시 이 시나리오를 샀는데 각본료 역시 저렴했기에 안서가 나중에 다시 사올 수 있었다. 안서는 “난 두기봉이 이런 결말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 짐작했다. 그래서 절대 찍지 않을 거라고. 내가 시간을 투자해 만들어낸 각본을 두기봉이 만들지 않으니 내가 사오는 게 나았다.”고 말한다.

과거 홍콩의 대다수 감독들의 눈에 안서는 매우 강력한 시나리오 작가로 비춰졌다. 가볍게 자신의 시나리오를 바꾸지 않았고 감독과의 언쟁도 피하지 않았다. 현재 감독이 된 안서는 기자에게 사실대로 말한다. “예전엔 남들이 내 각본을 고치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욕까지 했었다. 지금은 내 감독작이 어떤지 보니 나도 그들과 별 차이가 없는 걸 알겠더라…….”


새해 안서는 혼자 작업실에서 러프컷을 보고 있자니 무척 심란했다. 그녀는 계속 “저걸 어떻게 해!”라고 생각했다. 친구는 “네가 경험이 없어서 그래. 사실 딴 감독들도 러프컷 볼 때 다 너처럼 그래.”라고 위로했다. 당시 그녀는 작업실의 활짝 열린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안서는 감독이 되고자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영화를 감상할 때 어떻게 찍었다던 지 어떤 장면이 좋다던 지 연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감독이 되어 제일 큰 만족감은, 만들어질 가능성이 없는 영화의 소재를 영화로 완성했다는 점이다”라고 안서는 밝힌다.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은 <첨밀밀>과 <남인사십>

안서가 진정으로 영화 시나리오를 쓴 건 시기가 꽤 늦었다. 1976년 그녀는 첫 번째 작품 <칠여성(七女性)>의 각본을 자신이 쓰고 공연했다. 홍콩영화자료관에서 후에 몇 차례 상영했지만 그녀는 맞아 죽어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 필름들을 태워버리라고 했다, 너무 창피했다.” 방송국에 있을 시절, 상업성이 적고 사회문제를 반영하는 작품을 그녀는 주로 썼고 이는 그녀에게 단련의 기회였다. 후에 그녀는 다시 뛰쳐나와 공관공사(公關公司), 광고공사(广告公司) 등에서 몇 년 일했다. “나는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광고, 공관 공사에 있던 시절이 바로 나의 사회 대학이었다. 나는 미친 듯이 영문책을 읽고 번역했다.”

90년대 중기, 진가신이 안서를 찾아와 <마마범범(■■帆帆)>의 각색을 청하면서 그녀는 정식으로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두 번째 영화 시나리오 작품인 <첨밀밀>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마마범범>을 각색하는 중 진가신은 <첨밀밀> 이야기를 꺼내며 안서에게 흥미가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즉각 대답했다. “당연하죠!” 얼마 후 안서는 택시에서 등려군의 부음 소식을 듣는다.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등려군은 얼마나 젊었는데. 나중에 나는 등려군을 영화 속에 밀어 넣었다. 등려군이 있어야 남녀 주인공의 개성이 진짜로 표출될 수 있었다.” 안서는 기자에게 말했다. 그녀가 그날 만약 등려군의 부음을 듣지 못했다면 노래가사를 찾을 생각도 못했을 거고 그 영화의 제목은 <첨밀밀>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며 “인생이란 이렇게 우연적이다”고.


홍콩에서 시나리오를 쓰는 여성 작가는 많지 않다. 그러나 안서는 통상 남자 감독과 작업한다. “남자 감독이 주로 여성보다 보수적이기 때문에” 서로 설복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첨밀밀> 로 명성을 얻은 안서는 감독들의 존경도 받았다. 그러나 자신과 감독과의 교류에 문제가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당신의 작품이 완성될 때 까지 기다린다. 문제가 생겨서 만약 당신의 자신의 각본을 변호하면 그들은 그걸 내가 각본을 고칠 의사가 없다고 간주한다. 그래서 곧장 당신의 각본을 가져가서 다른 사람에게 고치게 한다.”

이런 시나리오의 피동성을 안서 역시 받아들여야 했다. 우연히 시끌벅적한 하세편을 맡게 되면 그녀는 일고를 완성하자마자 쉰다. 마음이 안정되고 이 각본이 만들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면 감독의 의도에 따라 다시 수정한다. “나는 결국 내 자신이 고치는 게 남이 고치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고 인정했다.”

안서 역시 실수의 시기가 있었다. 수많은 영화팬들은  <성룡의 빅타임>, <엑시덴탈 스파이>, <옥관음>, <호접비> 가 그녀의 작품이라는 걸 믿고 싶어 하지 않고 심지어 “문예물에서는 1류지만 액션물에서는 9류”라고 까지 평한다.


안서는 자신의 한계를 부인하지 않는다. <옥관음>의 실수는 “내가 다시는 다른 사람의 작품을 각색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난 광동어 시나리오에 어울린다는 의미이다.”<호접비>에 대해서는 무척 괴로워하고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그 작품은 홍콩에서 수없이 비난받았다. 나와 두기봉은 서로를 책망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 작품은 정말이지 내가 쓴 시나리오에 충실했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 홍콩에는 조잡한 영화가 무척 많다, 당신들은 <호접비>도 그런 류라고 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