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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하얀 비키니의 복수 (女性的復仇; Woman Revenger,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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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비키니의 복수 (女性的復仇; Woman Revenger, 1981)

감독 : 구양준
출연 : 양혜산, 유덕개, 막사성, 마사, 장영진
 

  [하얀 비키니의 복수]는 1970년대 말부터 타이완 영화계에서 유행했던 소위 사회영화 중의 한편으로, 야쿠자들과 맞서 싸우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액션물이다. 주인공 꾸링링(양혜산)이 친구인 양메이화가 보낸 편지를 읽는 장면으로부터 영화가 시작되는데, 두 사람은 같은 고아원에서 자란 듯하다. 그 편지는 자신이 지금까지 고아원으로 보낸 돈은 정직하게 일을 해서 번 돈이 아니라 야쿠자 조직에서 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 야쿠자들이 자신의 동생인 양메이펑을 노린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메이화는 편지를 통해 싼랑이라는 친구가 일본에서 너를 도울 것이라며,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메이펑을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곧 메이화는 온천에서 알몸으로 목욕을 하다가 야쿠자들에게 살해된다.

  메이화가 살해된 것을 안 링링은 일본으로 건너가 싼랑을 만나고, 싼랑과 함께 메이펑을 찾기 시작한다. 그들은 어렵사리 메이펑을 찾아내지만 메이펑은 노구치라는 남자에게 푹 빠져 있어서 링링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나 노구치야말로 메이화를 죽인 원흉이었다(메이화를 직접 살해한 까오차오라는 인물은 태국으로 피신했다 살해당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메이화는 조직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노구치가 맡은 헤로인을 훔쳐냈으며, 그 헤로인을 찾지 못하면 노구치는 야쿠자 우두머리인 까오펑 회장에게 죽임을 당할 처지였다. 그래서 노구치는 메이펑과 링링, 싼랑을 필사적으로 괴롭힌다. 노구치가 하는 또 다른 일은 인신매매로, 잘 생긴 노구치는 여성들을 유혹해서 자신에게 빠져들게 한 뒤 유인 납치하여 몸을 팔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링링은 메이펑이 노구치의 마수에 걸려든 것을 알고 그녀를 구하려 한다.

  너무 웃겨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들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사라진 메이펑을 찾기 위해 애쓰던 싼랑이 말한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야.” 일본에서 왠 서울의 김서방? 웃기지만 이건 번역상의 문제라서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악당들의 소굴에서 까오펑 회장을 만난 링링은 그와 불꽃 튀기는 설전을 펼친다. “네가 예쁘지 않았다면 진작 너를 쫓아냈을 거야.” “회장님은 도박에 그렇게 자신이 있다죠? 그럼 내기를 하죠. 저는 저를 걸 테니, 회장님은 메이펑을 거세요.” 야쿠자들과 도박을 해서 어떻게 이기겠다는 거지?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걱정이 된 싼랑이 링링에게 묻는다. 그러자 링링이 대답하기를.

“우리 아빠는 타짜였어.”
“우리 아빠는 타짜였어.”
“우리 아빠는 타짜였어.”
“우리 아빠는 타짜였어.”

 
이 대목에서 관객들은 뒤집어졌다. 아빠가 타짜였다고 딸까지 도박의 고수라는 이 참신한 설정. 다음 장면은 더 웃긴다. 링링은 원래 체조 선수 출신에다 쿵푸 고수였는데 이런 사람이 도박을 하면 어떤 수를 낼 수 있는지 보자. 링링과 야쿠자 나카무라가 하는 도박은 통 안에 주사위 세 개를 넣고 흔들다가 통을 탁 놓으면 주사위가 나오는데, 나온 숫자가 정해진 수에 가까운 쪽이 이기는 것이다. 링링이 말하길, “두 판 다 비기면 제가 지는 걸로 하죠.” 배짱도 좋다. 처음엔 큰 수가 나오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한다. 나카무라의 주사위는 6-6-6, 링링의 주사위도 6-6-6. 비겼다. 한 번만 더 비기면 나카무라가 이긴다. 다음엔 작은 수가 나오는 쪽이 이기는 것. 나카무라의 주사위는 1-1-1. 이보다 더 작은 수가 나올 수 없으니 나카무라가 이긴 셈인데, 이때 링링이 통에 주사위를 넣고 굴리면서 말한다. “제가 이겼습니다.”어떻게 이겼다는 거지? 모두가 의아하게 지켜보고 있는데 링링이 통을 탁 놓자 주사위가 나온다. 놀랍게도 주사위 셋 중 하나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주사위 표면이 닳아 없어진 것이었다. 1-1이 나왔으니 링링이 이긴 것이다. 도대체 어떤 방법을 쓴 거지? 궁금한 싼랑이 나중에 링링에게 묻자 그녀가 대답한다.

“내공을 써서 주사위 하나를 부셔버렸어.”
“내공을 써서 주사위 하나를 부셔버렸어.”
“내공을 써서 주사위 하나를 부셔버렸어.”
“내공을 써서 주사위 하나를 부셔버렸어.”

 
네가 최고입니다. [하얀 비키니의 복수]의 화려한 대사는 이게 끝이 아니다. 헤로인을 찾지 못하고 메이펑과 링링을 회장이 풀어주고, 그들이 일본을 떠날 날이 다가오자 노구치는 부하들을 보내 그녀들을 기습한다. 마침 두 사람은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야쿠자가 목욕탕 안으로 들어오며 하는 말.

“등 좀 밀어줄까?”
“등 좀 밀어줄까?”
“등 좀 밀어줄까?”
“등 좀 밀어줄까?”

아니 야쿠자가 언제부터 때밀이가 됐단 말이냐.

  [하얀 비키니의 복수]는 꽤 잔인한 영화다. 그러나 잔인한 장면들도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주는데, 가령 노구치의 부하들이 말을 듣지 않는 여자들을 고문하는 장면이 있다. 사람 인 모양의 나무에 여자를 쇠사슬로 묶고 거꾸로 세운다. 그 다음에 꿀을 다리에 흘리면 개미가 꼬여드는 것이다. 그들은 이 고문 방법을 개미고문이라고 부르는데, 극중에서 이 고문을 당한 메이펑은 개미에 대한 공포증을 갖게 된다. 반대로 이번에는 여자들이 야쿠자를 응징하는 장면. 야쿠자 중 하나인 이시이를 유혹하는 데 성공한 여자들. 한 여자가 허리띠를 푸는데 그 허리띠는 튜브로 되어있었고 안에는 뱀이 들어있었다. 여자가 뱀을 이시이의 팬티 속에 넣는다!

 
[하얀 비키니의 복수]는 제목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복수 영화고, 당연히도 링링이 노구치에게 눈을 잃은 후 복수하는 일이 영화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왼쪽 눈에 안대를 한 링링이 친구의 도장에 찾아가서 수련생들을 불러놓고 “나는 지금부터 양심도 없는 남자들을 응징하러 간다. 나는 내 목숨을 걸 것이다. 너희들은 나를 따르겠는가?”라고 말하면 모두들 머리를 숙이고 “예!”라고 외치는 엄숙하고도 멋진 장면이 있지 않은가(물론 생각해보면 웃기는 장면이긴 하다. 쿵푸를 배우러 온 사람들이 갑자기 결사대가 되다니). 그러나 아쉽게도 균형이 맞지 않는다. 복수는 너무 짧고 그 전까지의 과정은 너무 길다. 그래서 보고 나면 뭔가 아쉽고 허무한 느낌이 드는 걸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하얀 비키니의 복수]는 B무비의 재미란 무엇인지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류의 영화는 허접하고 선정적인 재미로 보는 것이지, 완벽을 기대하면 안 된다.

 
제목인 [하얀 비키니의 복수]는 물론 의역이지만 영화 내용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노구치 일당은 여자들에게 하얀 비키니 같은 옷을 입힌 다음에 손님을 맞이하도록 한다. 나중에는 링링을 비롯한 쿵푸 도장 수련생들이 하얀 비키니를 입고 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