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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첩혈가두 - 堞血街頭,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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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첩혈가두 - 堞血街頭,1990> 는 '오우삼' 의 가장 야심에 찬 프로젝트이고 꼭 완성해야만 할 영화였을 것이다. <첩혈쌍웅> 을 끝으로 프로듀서였던 서극과 결별을 하고 '오우삼제작유한공사' 라는 자신의 영화사를 차려 만든 첫 번째 영화였을 뿐 아니라 그의 젊은 시절이 반영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영웅본색> 과 <첩혈쌍웅> 의 성공이 서극의 덕이었다는 의심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뭔가를 보여줘야 했을 시기였고 베트남전을 소재로 한 <첩혈가두> 는 그 전환점이었다.


   비록 오우삼은 <첩혈가두> 의 실패로 휘청거렸고 평가 또한 열렬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후회가 덜했을 것이다. 또 <첩혈가두> 의 실패가 아니었다면 <영웅본색> 이전의 활극 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종횡사해> 가 나오기 어려웠을 지도 모르겠다. <첩혈가두> 는 오우삼에게나 그의 팬에게나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있는 영화다.


   각각 양조위 (아비), 장학우 (아휘), 이자웅 (아영) 이 연기한 인물들은 홍콩의 빈민가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뒷골목의 별 볼일 없는 건달, 어울려 다니면서 싸움질이나 하는 게 고작이지만 누구보다 강한 신의와 믿음으로 다져진 친구들이다. 또래의 젊은이들처럼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하고 머릿기름을 바르는 것으로 멋을 내기도 하지만 구두로 머리를 때리는 어머니에게 돈을 벌면 제일 먼저 딱딱하지 않은 신발을 사주겠다는 순박한 청년들이기도 하다.


   그의 영화에서 늘 홍콩을 벗어나려던 주인공들은 마침내 베트남이라는 보다 넓은 공간으로 떠나게 된다. 장철의 <자마> 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듯한 인물들은 베트남전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와 맞물려지면서 더욱 비극성을 띈다. 전쟁은 세 친구들을 완벽하게 망가트린다. 희망을 찾아 떠나 간 베트남은 홍콩에서 보다 더한 고통과 상처만 기다리고 있다. 수시로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바뀌는 전쟁터에서 총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던 아영은 그 총으로 20년 동안 쌓아왔던 우정을 단숨에 날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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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첩혈가두> 는 서극의 <영웅본색3> 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의 영화에서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겼던 신의라는 것의 실체를 거슬러 올라가는 듯 보인다. <첩혈쌍웅> 에서 주윤발은 돈에 움직이는 이 바닥의 도덕과 윤리를 개탄하면서도 끝까지 신의를 지키려 하지만 <첩혈가두> 는 낭만적인 무사들의 세계가 아니다. <첩혈쌍웅> 에서 적대적인 상황의 두 남자가 보여줬던 감정의 교류는 그저 총 한 자루면 끝장이고 금괴 상자 앞에서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일 뿐이다.


   아휘의 유골 상자를 사이에 두고 총질을 해대면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을 교차하는 장면은 원래의 결말과는 전혀 다르지만 그런 점에서 노골적이다. 그들이 함께 타던 낡아빠진 자전거는 그렇게도 소원하던 최고급의 벤츠로 바뀌었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온기로 가득하던 부두는 수출용 컨테이너에 둘러싸여 인적을 찾아볼 수도 없다. 그 적막한 공간에서 한 친구의 유골은 길바닥에 내 팽개쳐 불타고 두 친구는 각자의 방법으로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서로에게 총을 겨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인가. 돈을 벌어서 같이 홍콩으로 되돌아가자던 세 명의 친구들은 애초의 약속대로 홍콩으로 돌아왔지만 결코 함께 일 수 없는 운명으로 뒤바뀐다.


   찢기고 부서진 벤츠처럼 현실은 그렇게 참혹하고 앙상하기만 한데 그들은 총알이 박힌 친구의 머리를 한참동안 감싸 안는다. 신파도 이런 신파가 없다. 이 지독할 정도로 아이러니한 비극, 차마 이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절절한 정서를 언제나처럼 오우삼은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다.  


   <첩혈가두> 에서 액션은 셀 수도 없이 많다. 당시로는 꽤 많은 제작비를 들인 탓에 남김없이 쏟아 붓는다. 특이한 점은 전개 과정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액션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홍콩의 골목을 전전하며 벌이는 싸움은 약간의 도구를 이용하는 맨주먹 결투 (라고 하기엔 그렇고 그냥 개싸움이다), 살인을 저지르고 베트남으로 도망간 후부터는 대규모의 총격과 폭발, 다시 홍콩으로 돌아와 벌이는 자동차 추격과 총격전등. 그 많은 액션은 오우삼의 이전 영화들과 비교하면 덜 감각적이다. 상당히 거친 액션을 그대로 보여준다. <영웅본색2> 와 <첩혈쌍웅> 에서처럼 좁은 실내에서 다수가 뒤엉키는 절정의 아수라장도 거의 없다.  


   마지막은 액션 장르의 쾌감이 거의 없는 편이다. 상업적인 판단을 위해 좀 더 액션 영화의 모양새를 취했으면서도 그렇게 보이는 건 액션을 기대한 관객에게 꽤 실망스런 일이긴 한데, 다른 측면에서 기능을 한다. 차가 부서지고 총탄이 난무하고 피가 튀기고 하는 것들은 공허하다는 느낌까지 준다. 액션이 빈약한 내러티브를 대신해 꽤 설득력 있는 배경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첩혈가두> 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세 친구들이 패싸움을 벌이는 도입부다. 액션이 캐릭터를 설명하고 더 나아가 그들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이건 참 가슴 찡한 경험이다.


   앞에 잠깐 얘기했듯이 원래 오우삼이 의도한 <첩혈가두> 의 결말은 비교적 단순 (?) 했다. 홍콩으로 돌아온 아비가 가족들을 만나고 난 뒤에 아영을 찾아가는 것까지는 개봉 당시의 판본과 거의 비슷한데 이후 부둣가에서 벌어지는 액션은 모두 사라졌다. 아영이 아휘에게 총을 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아비가 아영의 머리에 옷을 뒤집어씌우고 뒤통수에 총알을 박아 넣는 것으로 끝이 난다. 내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던 것과는 달리 군더더기가 없다. 이런 결말이 <자마> 의 이야기와 인물을 가져 온 영화에 더 어울리기는 했을 것이다.


   후에 오우삼이 영화제용으로 내놓은 판본에는 원래의 결말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이 판본은 오즈시네마의 '오우삼 회고전' 에서 국내최초로 상영된 적이 있는데 어쩐 일인지 DVD로 출시된 홍콩 콘템포러리 컬렉션은 후반부의 액션이 모두 살아있는 131분짜리다. (결말에 대한 이야기는 확실한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순전히 기억에 의지해 쓰는 것이므로 틀릴 수도 있습니다. 혹시 맞지 않다면 지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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