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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우견아랑 - 阿郞的故事,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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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까지 사실이고 허구인지 확인할 길은 없어도 <우견아랑 - 阿郞的故事, 1989> 은 주윤발의 실제 친구를 모델로 만들어진 영화로 알려져 있다. 감독 두기봉은 <천장지구> 나 <지존무상2> 같은 영화에서 곧잘 눈물 콧물 짜는 신파를 만들어내곤 했는데 <우견 아랑> 도 그 범주에 속하는 영화다. 앞의 영화들이 겉으로는 홍콩누아르와 도박이라는 변종 장르에 충실하면서 스크린 밖으로 뿜어져 나올 듯한 비애 (지존무상2 에서 오천련이 죽고 유덕화가 장님이 되는 부둣가에서의 장면들은 압도적이다) 를 풀어놨다면 <우견아랑> 은 그냥 뼈 속까지 신파 멜로드라마다.


   치렁하게 기른 머리에 오토바이 경주를 즐기는 아랑 (주윤발) 은 별 다른 직업도 없이 사는 룸펜이다. 패패 (장애가) 는 그런 아랑과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게 된다. 후일 고백하듯이 젊은 날의 열정과 치기도 섞여있는 그런 것이다. 문제는 아랑이 책임감 따위는 없는 구제불능의 날건달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두 사람의 처지가 갈린다. 패패는 아랑과 헤어지고 난 뒤에 아이를 낳지만 출산 중에 죽었다는 부모의 말을 그대로 믿고 미국으로 도망치듯 유학을 떠난다. 그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되어 나타나지만 아랑은 여전히 길바닥을 전전한다. 패패가 아랑을 떠난 이유는 그의 바람기 때문인 것처럼 묘사되는데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위태로움에서 벗어나 좀 더 안정적으로 살고 싶은 바람이 컸던 걸로 보인다.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이 겪게 되는 갈등도 그런 것이다. 패패가 보기에 아랑은 변한 것이 전혀 없다. 단지 겉모습만이 아니라 삐딱하고 불성실해 보이는 태도가 그렇다. 패패는 아들이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우견 아랑> 은 깊은 오해와 미움으로 헤어진 사람들이 다시 만나 겪게 되는 거의 모든 감정의 부침을 날 것처럼 보여준다. 뒤늦게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엄마와 아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길 바라는 아버지와 그런 마음을 알면서도 같이 살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아들, 긴 시간동안 갈라놓았던 미움이 희미해져도 마음 같지 않게 엇나가고야 마는 과거의 연인 사이에는 채 말로 하지 못할 애틋함과 연민으로 가득하다. 배려가 부족했던 지난날에 대한 원망 반, 그리움 반이다. 그들의 뒤늦은 만남은 잃어버린 가족의 틀을 복원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자 동시에 철모르던 한 남자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종종 후회와 반성은 너무 늦게 찾아온다. 인생의 불가해성을 신파로 만들겠다는 의지는 강력하다. 기어이 아랑은 피범벅이 되어 길바닥을 구른다. 언뜻 이런 결말은 무책임해 보이기까지 한다. 곧바로 올라오는 엔딩 크레딧은 더욱 의심을 살 만 하다. 하지만 꼭 그렇게 비극적인 맺음을 했었느냐에 대한 물음은 무의미한 걸지도 모른다. 당시 홍콩 영화의 한 경향 (이자 주윤발이라는 배우만의 아우라) 이었기에 그런 걸 수도 있고, 홍콩판 <챔프> 로 만들겠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반드시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뼈아픈 교훈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건 간에 <우견아랑> 은 신파 멜로드라마의 기능을 충실히 한다. 이 영화를 보고 울지 않는 자, 사람도 아니다 라는 우스개가 떠돌기도 했으니 말이다.


   배우들도 좋다. <최가박당> 시리즈에서 드세고 수다스러운 배역으로 알려진 장애가도 눈에 띄지만 뭐니 해도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것은 주윤발이다. 매사 껄렁껄렁한 말투를 달고 사는 고독한 아웃사이더에 주윤발 만큼 어울리는 배우는 없다. 특히 후반부에 오토바이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은 주윤발을 위한 화보다. 길게 뻗은 탄탄한 몸매에 가죽점퍼를 입고 우수에 젖은 표정으로 오토바이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장면은 그의 팬이라면 짧은 탄식이 나올 만하다. 맹랑하면서도 속 깊은 아들을 연기한 황곤현이라는 아역 배우와 든든한 조력자인 오맹달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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