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철의 영화는 아주 단순하다. 왕우 주연의 <독비도>는 영화가 시작하자 주인공의 아버지가 억울하게 죽고, <신독비도>에서는 주인공이 팔을 자른다. 무협물을 비롯한 많은 영화들에서 복수란 주인공이 필연적으로 행할 수 밖에 없는 행동이고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가장 간단한 예는 부모를 잃었을 때고 친구나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을 잃었을 때도 역시 많다. 자신의 혈육이 억울하게 죽은 경우 사람은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 이때의 복수는 선택의 성질과는 다르다. 작은 은혜를 입은 사람과 관련된 복수도 어찌보면 마찬가지다.
쇼브라더스의 흥망성쇠나 6,70년대 무협영화의 계보, 장철과 호금전 비교, 뒤를 잇는 감독, 왕우 이후의 여러 배우들 등에 대해서는 각자 찾아보라. 요새 여기와 관련된 자료도 워낙 많으니 왠만한 영화광이면 지식은 있을꺼다. (씨네21에 실린 정성일의 글을 참조하면 좋다)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獨臂刀 독비도: One-Armed Swordsman, 1967)
돌아온 외팔이 (獨臂刀王 독비도왕: Return of The One-Armed Swordsman, 1969)
신독비도 (新獨臂刀: New One-Armed Swordsman, 1971)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獨臂刀 독비도: One-Armed Swordsman, 1967)
액션을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할 것이고, 고전이라는 기대감도 버리는게 낫다, 는 쪽이다. 정패패는 정말 예쁘고(말 그대로 곱다), 왕우 참 멋지다. 외모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딱히 되는것도 아닌데 처음 보자마자 "오호, 괜찮은걸" 이랬다. (흠...아줌마 취향인가?)
가장 기묘한건 이들이 행하는 복수다. 원수를 갚기 위해 몇년간 수행한 후 하산, 복수하는건 낯익다. 그런데 이 영화들을 보면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바로 돌진하다 개죽음 당한다. 이상한건, 이들이 죽을걸 알면서도 돌진한다는 거다. 그럼 결국 복수란, 내가 어이없이 죽게되더라도 반드시 해야만하는, 할 수 밖에 없는 어떤 것? 이었던걸까. <독비도>는 모든 장면이 세트장서 촬영돼 보는내내 진짜 답답하고, 소품도 참 유치하다. 대신 왕우가 팔 잘리는 장면은 얼떨떨하다고나 할까. 그렇게 허무하게 잘릴지 몰랐다. 원수랑 싸우다가 잘리거나 아니면 정절을 맹세하며 자르거나 뭐 그럴줄 알았더니 너무나 허무하게 툭~잘려버리고 만다. 팔이 하얀 눈밭에 툭 떨어진다. 팔을 자른 사부의 딸은 그다지 당황하는 표정도 아니다(연기를 못해서일듯). 잘린 어깨를 한손으로 잡으면서 (잘린 그 순간) 왕우가 클로즈업되는데, 이 부분이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다.
돌아온 외팔이 (獨臂刀王 독비도왕: Return of The One-Armed Swordsman, 1969)
돌아온 왕우가 강호의 나쁜 8대도왕을 소탕하는 내용이다. 점점 더 센 악당이 나타날뿐 아니라 중반에는 대회까지 있다. 이런 구성 참 좋아한다(드래곤볼 천하무술대회 풍). 그래서 무척 신나게 봤다. 악당도 많아지고, 죽는 사람도 많아지고, 배경도 다양해지니 이렇게 신날 수가.
신독비도 (新獨臂刀: New One-Armed Swordsman, 1971)
<신독비도>는, 내가 보기에 약간 성질이 다르다. 주인공인 강대위와 적룡은 잠깐 스친 사이라고 할 정도로 인연이 짧다. 시간의 길이가 정의 깊이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목숨을 걸고 복수를 실천할 정도의 길이는 되어 보이지 않는다. 미운정 고운정이 쌓이고 나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인간관계가 될 수 있다고 믿는 나에게 이런 부분은 꽤 낯설기까지 했다. 이런 짧은 만남을 누구는 사랑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런 면을 확대시킨다면 이 영화는 퀴어영화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럼 왜 강대위는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복수를 꾀하는가? 적룡이 은인이었기 때문에? 적룡에게 도움은 받지만 굳이 안받아도 되는 작은 일이다.
강대위가 복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건 적룡이 지기(知己)이기 때문이다. 지기란 무엇인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다. 나를 낳아줬기에 아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알고 은혜를 베풀어 줬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나를 알아준 '지기'를 위해서 강대위는 칼을 든다. 때문에 그의 얼굴은 왕우처럼 비장하지 않고 결연하지도 않다. 강대위의 얼굴은 슬퍼보이고, 마지막 순간에도 망설임이 엿보인다. 때문에 그의 얼굴은 낯설지 않고 때로는 가슴이 아리기까지 한다.
지금과 그때는 시대가 다르고 환경이 틀리고 사람이 다를지도 모른다. 현재가 배경이면 유치할 수 있기에, 반드시 과거 어느 시대로 설정되는지도 모른다. '나랑 다르니까' 이렇게 간단히 말하고 넘어갈 수 없는 것. 그게 내가 장철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