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 첩혈쌍웅 - 첩혈속집
"참으로 무지막지 하군요. 하지만 무척 아름답기도 합니다..." 나름대로 폭력 묘사에 일가견이 있는 마틴 스콜세지가 <첩혈쌍웅> 을 보고 한 말이다. 수다꾼 타란티노는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를 그리고 오우삼은 액션을 연출 한다" 고도 했다. 흔히 오우삼을 폭력미학의 거장이라고 한다. 과연 폭력도 미학이 될 수 있는지 선뜻 동의하기는 꺼려지지만 정말 오우삼의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폭력도 아름답게 보여 질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그정도로 오우삼의 액션 연출은 압도적이다.
한창 총격전이 벌어지는 순간을 고속촬영으로 느리게 보여주는 장면에서 오우삼의 목적은 분명하다. 한 순간에 사람이 죽어 나자빠지고 피를 흘리는 아비규환의 현장을 오랫동안 지속시키면서 인간의 몸짓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육체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것이다. 동시에 극단적인 폭력의 묘사는 폭력의 부조리를 부각시킨다. 이를테면 <페이스 오프 - Face Off> 에서 올리비아 뉴튼 존의 'Over The Rainbow' 가 흐르는 장면의 이율배반적인 정서는 오우삼의 스타일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칫 이런 스타일은 액션의 연속성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오우삼은 액션 자체에만 집착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껏 과장된 감수성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어쩌면 오우삼의 영화들을 설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점이기도 할, 적대적인 위치에 서 있는 주인공의 동질감 (그것이 피를 나눈 친구이건 양립할 수 없는 적이던 간에) 은 나와 타자, 혹은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성과 논리로는 설명될 수 없는 묘한 쾌감을 준다. 여기에는 오우삼이 장철의 조감독 출신이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첩혈속집 - 辣手神探, 1992> 은 더도 없는 그만의 영화다. 비밀경찰 토니 (양조위) 와 그를 추적하는 데킬라 (주윤발) 를 둘러싼 동질감의 확인이나 터무니없을 정도로 감상적인 정서는 여전히 영화의 중심이 된다. 다만 이전보다 둘 사이를 묶어주는 감정의 폭이 줄어들어서인지 교감 보다는 중반 이후부터 액션을 보여주는데 치중 한다 (양조위가 연기한 캐릭터는 후에 무간도에서 상당부분 참조하기도 했다). 액션 장면들만 보면 오우삼의 스타일을 극한까지 밀고 가고 있을 뿐 아니라 대규모 폭발이나 아기를 안은 채로 건물을 탈출하는 장면 등에서는 할리우드 액션영화들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후반부의 병원에서 벌어지는 대량 학살은 길기도 하거니와 규모 또한 엄청나다. 바닥에 나뒹구는 시체들의 수나 피가 튀고 살점이 뜯기는 잔혹함에 있어서는 <영웅본색2> 에 뒤지지 않고 총에 맞아 쓰러지는 순간에 집중하는 슬로우의 미학은 <첩혈쌍웅> 을 뛰어 넘는다. 그의 장기인 좁은 공간 안에서 총의 반동이나 탄수제한 같은 물리적 작용을 무시하고 일당백으로 벌이는 총격전은 무척이나 현란하고 능수능란해서 숨이 막힐 정도다. 자신의 영화를 변주하고 모방하는 방식은 이전보다 훨씬 노골적이지만 워낙 액션의 파괴력이 큰 탓에 "영화 속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황당하게 죽어 버리면 초현실적인 영화가 된다" 는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의 말처럼 무차별적인 폭력과 살인은 마치 한 편의 장대한 '오페라' 처럼 보이게 한다.
<첩혈속집> 은 국내 개봉 시에 영화사와 검열의 횡포로 20여분이 잘려 나갔다. 그 중 대표적인 장면은 엔딩인데 오리지널은 양조위가 소원대로 북극으로 떠나는 것이지만 국내 개봉판과 비디오에는 양조위가 죽는 걸로 끝이 난다. 전혀 엉뚱하게도 <첩혈쌍웅> 의 속편 (실제로 영화가 완성되기 전의 국내 홍보용 제목은 첩혈쌍웅2였다가 나중에 바뀌었다) 임을 넌지시 드러내는 제목과 비극적인 결말이 흥행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흥행에는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