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강호 - Curry And Pepper, 1990
카레 (장학우) 와 고추 (주성치) 는 용의자의 안전 따위 무시하고 증거조작도 서슴지 않는 경찰이지만 우정만큼은 대단한 사이다. 어느 날 경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로 (백안니) 가 찾아오면서 경찰학교에서부터 이어진 둘의 관계는 서서히 틀어진다.
영화 <성전강호 - Curry And Pepper, 1990> 는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깊은 신뢰로 뭉친 두 명의 경찰이 무기밀매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는 버디액션누아르 (?) 지만, 실은 그런 것과 거의 상관없는 코미디기도 하다. 그 중심은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절친한 친구의 티격태격. 장학우와 주성치가 사이좋게 짝패를 이루고 있는데 둘의 조합은 꽤 잘 어울린다. <개심물어> 에서 매염방의 동생으로 나왔던 백안니는 별 다른 부연 없이도 흔들리는 우정을 설득할 만큼 매력적이다.
세상 모든 여자들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터무니없는 자신감, 일단 김칫국 먼저 마시고 보자 식의 태도는 카레와 고추 모두 똑같은데 아옹다옹하는 모습은 참 눈꼴시어서 못 봐주겠다. 무슨 독을 품고 헤어지는 연인마냥 내가 꿔준 돈 얼른 갚고 내가 사준 옷, 신발은 벗어놓고 가라는 식이다. 그것도 성에 안 찼던지 서로의 물건에 이름을 붙여놓고 같이 찍은 사진에 선을 그어 놓는 유치한 짓을 벌이다 경찰 업무를 수행하는 것에도 사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둘의 자존심을 건 대립은 하도 끈끈해서 그들 사이에 낀 한 여자를 퇴치하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특별한 이야기 없이 두 캐릭터를 충돌시키면서 단발적인 농담을 툭툭 던져놓는다. 자기 집이 도둑맞는지도 모르고 그 물건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좋아 보이네요, 라는 식이다. 장학우와 주성치는 환상의 궁합을 보여주지만 그래도 조금 더 빛나는 건 앳된 얼굴로 장난기와 껄렁함을 마구 분사하는 주성치다. 카레 (Curry) 는 발음이 비슷해서 'gary' 시계를, 고추는 생긴 게 똑같지 않느냐는 이유로 로에게 곰 인형을 선물 받게 되는데, 한 명은 버림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곰 인형을 안은 채로 "사실, 내 이름이 로렉스거든요" 라고 혼자 되뇌는 (주성치의) 농담은 처절하다.
두 캐릭터가 사사건건 충돌하다 매춘업자이자 정보원인 테니 (증지위) 가 끼어들고 무기밀매조직과 배 안에서 결판을 낸다는 내용은 척 봐도 <리쎌워폰2> 를 그대로 빌려온 것이다. 제작자 진가신과 각본을 쓴 완세생, 테니로 나오는 배우 증지위는 영화제작사 UFO (United Filmmakers Organization) 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들. <성전강호> 는 UFO가 설립되기 바로 직전에 만들어진 영화지만, 할리우드의 장르 영화를 경쾌하게 풀어낸 UFO의 여러 영화들과 겹쳐 보인다. 크리스마스와 신년인 영화 속의 배경답게 적당히 밝고 떠들썩하다.
그 외에도 <무간도> 의 유위강이 촬영을, <철갑무적 마리아> 와 복성시리즈에서 특유의 파머머리를 휘날리며 냉소적인 농담을 쏘아대던 배우이자 제작자인 잠건훈이 카메오로 출연하고 있으며 스턴트와 악역으로 잘 알려진 가수량이 연출했다.